흑인 노예 소녀의 자서전 < 린다 브렌트 이야기 >의 본문을 살짝 보여드립니다. 굉장히 현실적이라, 보면서 참 마음이 아파요. ㅠㅠ
나는 나에 대한 주목을 끌기 위해 이 글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내 삶의 궤적에 관해 영원히 침묵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겪은 고통에 대한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려고 쓴 것도 아니다. 내가 진심으로 바란 것은, 아직도 노예제의 속박 아래 나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아니 그보다 더 극심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2백만 남부 여인들의 처지를 북부 여성들이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저 자유주 사람들에게 노예제의 실상을 알리고자 하는, 나보다 유능한 사람들의 말에 내 증언을 보태고 싶은 마음뿐이다. 오직 경험해본 자만이 그 악의 나락이 얼마나 깊고, 어둡고, 추악한지 깨달을 수 있다. (6쪽, 「저자 서문」에서)
주인이 외떨어진 집을 짓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은 후부터 내 감정에 새로운 것이 섞이기 시작했다. 미혼 남성의 관심을 받는다는 들뜬 기분과 그의 친절에 대한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에, 복수심과 계산이 섞이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만큼 플린트 씨를 분노하게 할 일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건 압제자에 대한 일종의 복수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인은 나를 팔아버림으로써 복수하려고 할 테고 샌즈 씨가 분명 나를 사려고 할 것이다. 그는 주인에 비해 아량이 넓고 생각이 깊은 사람이니 어렵지 않게 나를 자유롭게 해주리라. 운명의 위기가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 나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아이가 그 늙은 압제자의 소유가 될 것을 생각하면 치가 떨렸다. 그에게 새로운 욕망의 대상이 나타나면 그의 희생자들을 주저 없이 먼 곳으로 팔아 치울 거라는 것임을 잘 알았다. 아이가 생긴다면 특히 더 그럴 것이다. (88쪽)
플린트 씨는 노예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그나 아내의 눈에 띄는 것을 참지 못했다. 주인 같은 남자가 아니라면 내 아이들을 잘 보살펴달라고 부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점에서 나는 분명 행운을 만났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아이들도 노예 신분에서 해방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이런 모든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그 방법 외에는 이 참혹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없어 보였다. 결국 나는 몸을 던져 뛰어들었다. 덕망 있는 독자들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길, 그리고 용서해주길! 그대들은 노예 상태가 어떤 것인지 상상도 못할 것이다. 법과 관습의 보호는커녕 오히려 그 법에 의해 재산의 일부로 격하당한 채, 전적으로 타인의 뜻에 모든 것을 내걸어야 하는 짐승 같은 처지에 놓인 것이 바로 노예다. 그대들은 덫을 피하기 위해, 혐오스러운 폭군의 손아귀를 피하기 위해 혼신을 다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주인의 발소리에 소름이 끼친 적도, 그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치를 떨어야 했던 적도 없을 것이다. 나도 내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은 안다. 그것을 나만큼 절실하게 느끼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기억은 내가 죽는 날까지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하지만 내 인생에 일어난 수많은 일들에 대해 차분히 돌아보면, 노예 여성을 다른 사람과 같은 잣대로 심판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89쪽)
밀폐된 공기는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했고, 한 줄기 빛도 없는 온전한 암흑 속이었다.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어떤 구멍도, 틈새도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나를 계속 짓눌렀다. 단 한 줄기 빛도 없는 곳에서 언제까지나 몸을 똑바로 펴지도 못한 채 눕거나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하지만 노예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이느니 이런 상황을 견디는 게 나았다. (175쪽)
은둔처에서의 두 번째 겨울은 첫 번째보다 더 혹독했다. 운동을 못하고 똑같은 자세로 있다 보니 수족은 점점 감각을 잃어갔고 추위 때문에 계속 경련이 났다. 머리 쪽에서 느껴지는 냉기가 특히 심했다. 얼굴과 혀가 점점 굳는 것 같더니 급기야는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를 부르는 것은 물론 불가능했다. 동생 윌리엄이 찾아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필립 삼촌은 나를 계속 지켜보았으며 불쌍한 할머니는 회복의 기미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쉴 새 없이 처마 밑으로 오르내렸다. 얼굴에 찬물을 끼얹자 나는 정신이 돌아왔다. 깨어보니 동생의 품에 안겨 있었다. 동생은 몸을 숙여 나를 바라보며 눈물을 철철 흘리고 있었다. 나중에 동생은 내가 열여섯 시간이나 의식이 없어 죽은 줄 알았다고 말했다. (187쪽)
그곳에 누워 하루하루 보내자니 암울한 생각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 끔찍하고 비좁은 공간에도 감사하려고 애썼다. 아이들을 해방시킨 대가라고 생각하니 그 공간이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가끔은 자비로운 신께서 내가 당하는 고통으로 내 죄를 사해주시리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때로는 신의 처분에 공정함이나 자비심이라곤 아예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노예제 같은 악행을 왜 두고 보시는지, 어릴 때부터 줄곧 나는 왜 이렇게 박해받고 부당한 취급을 당해야 하는지 대답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런 생각은 오늘날까지도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189쪽)
나는 줄곧 불안 속에서 그 겨울을 보냈다. 아이들을 데리고 바깥 공기를 쐬러 나갈 때마다 마주치는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뱀과 노예주가 출몰하는 여름이 다가오는 게 두려웠다. 나는 사실상 남부에 있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뉴욕에서도 노예법의 적용을 받는 노예였다. 모순되게도 자유주라 불리는 이곳에서 말이다! (293쪽)
은신처에 뚫린 구멍을 통해 상황을 조망하고, 적의 상태를 파악하고, 역공을 날릴 계획을 짜는 이야기들은 마치 소설의 정석을 따른 듯한 느낌마저 준다. 또한 저자는 고립되고 갇힌 존재가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인종을 초월한 여성 간의 연대, 흑인 공동체 속에 자신을 위치시켰다. 핍박과 억압의 상태에 놓여 있으면서도 짓눌리거나 갇힌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7년간 갇혀 있는 상태에서도) 끊임없이 행동하고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는 느낌을 준다. 북부로 와서도 제일 먼저 한 일이 고향에서 도망 온 친구들을 찾는 것이었고, 가정부와 유모일을 하면서도 노예 해방 운동가, 여성 운동가들과 적극적으로 교우한다. 저자의 이런 적극적 관계 맺기는 여성 특유의 성향에 저자의 타고난 기질이 더해진 것일 수도 있겠으나, 오늘날 그녀의 자서전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이야기와 사건의 흥미를 돋우고, 인물의 매력을 더한 본질적인 이유가 된다. ‘억압–도주–자유의 쟁취’라는 일직선 구도가 아니라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자체가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어 텍스트의 풍부함을 더하기 때문이다. (「옮긴이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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