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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와이파리의 백서른네 번째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83일

 

어느 방사선 피폭 환자 치료의 기록






그때, 오우치는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파란 빛을 보았다.

피폭한 것이다.

그리고 오우치와 의료진의 83일에 걸친 장절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서른다섯 살의 사내 오우치 히사시가 묻는다,
방사선 피폭이란 무엇인가? 원전이란 무엇인가? 


1999년 9월 30일 오전 10시 35분께. 도쿄에서 북동쪽으로 약 110킬로미터 떨어진 이바라키 현 도카이무라 ‘JCO 도카이(東海) 사업소’에서 핵연료 가공 작업을 하던 서른다섯 살의 남자 오우치 히사시(大內久)가 대량의 중성자선에 피폭했다. 피폭량 20시버트. 무게로는 단 0.001그램. 그러나 중성자선은 ‘생명의 설계도’인 염색체를 산산조각내버리고, 처음에는 말짱했던 오우치의 몸은 장기도 조직도 피부도 재생하지 못하고 차츰차츰 시들어간다. 이 책은 오우치가 피폭한 순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하루하루 겪어야 했던 방사능 피폭의 결과들과 전례 없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치료를 이어가는 의료진의 고뇌, 그리고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영역 저 너머에 있는 방사선의 무서움을 담담하게 담아낸 혼신의 다큐멘터리다.
그것은 일본에서 처음으로 일어난 ‘임계사고’였다. 임계란 우라늄이나 플루토늄 같은 핵연료에서 일어나는 핵분열 반응으로 중성자가 발생하고 그 중성자끼리 충돌해 주위의 핵연료도 연쇄적으로 분열하는 상태를 말한다. 임계사고는 이런 임계 상황이 제어 불능 상태에 빠져 일어난다.
사고는 ‘어둠의 매뉴얼’이라 불리는 위법한 작업 공정을 관리자들이 임의로 더 축소해서 빚어진 철저한 인재였고, 그 작업의 소름끼치는 위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노동자 두 사람이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오우치는 피폭 83일째인 1999년 12월 21일에, 피폭량이 오우치의 절반 이하였던 동료 시노하라 마사토(篠原理人)는 211일째인 2000년 4월 27일에 숨을 거두었다. 
이 책은 2001년 5월에 방영된 NHK 스페셜 <피폭 치료 83일간의 기록―도카이무라 임계사고>를 바탕으로 “인터뷰를 할 때의 분위기나 표정을 문장으로 묘사함으로써 감상적으로 흘러가는 것은 피하고 (…) 생각 끝에 결국, 언어만을 충실히 전달하기로” 하고 “진료 기록 카드 같은 의료 정보를 넉넉히”(후기) 넣어 정리한 것이다. 감상적인 표현을 억제하고 오로지 사실만으로 엮고 있지만, 박력이 넘치는 글의 울림은 깊고도 묵직하다. 

방사선에 피폭한다는 것의 의미 

오우치는 스테인리스 양동이에 녹인 우라늄 용액을 여과기로 거른 다음 깔때기를 통해 커다란 침전조에 옮겨담는 작업을 하다가 중성자선에 피폭했다. 탈의실로 도망쳤지만 곧바로, 갑자기 구토를 하고 의식을 잃었다.
오우치의 피폭량은 20시버트, 무게로는 단 0.001그램에 지나지 않지만 보통 사람이 1년 동안 받을 수 있는 방사선량의 2만 배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8시버트 이상의 방사선을 쬐었을 때의 사망률은 100퍼센트다. 
피폭 이틀째만 해도, 그의 얼굴이 조금 붉어지고 붓고 눈의 흰자위 부분이 약간 충혈되기는 했지만, 피부가 타들어가지도 않았고 벗겨지거나 떨어져나간 곳도 없었다. 귀 아랫부분과 오른팔에 통증이 있다고 했지만, 물집조차 없었다. 의식도 또렷했다. 
그러나 방사선은 모든 유전 정보가 모여 있는 ‘생명의 설계도’ 염색체를 산산이 부숴버렸고, 오우치의 몸은 이제 피부도, 혈액도, 내장의 점막도 새로 만들어낼 수 없었다. 여동생의 말초혈 조혈모세포를 이식했지만, 그 유전자마저도 파괴되고 말았다.
임계사고는 전 세계에서 20건이 안 되고, 대부분은 30년도 전에 일어난 것들이었다. 응급 의료 전문가이자 원자력안전연구협회 피폭의료대책전문위원회 위원장인 마에카와 가즈히코(前川和彦) 교수가 도쿄대학병원을 통틀어 진료 체제를 꾸렸지만, 과학적으로 증명된 치료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떤 싸움이 될지, 또 얼마나 오랫동안 싸워야 할지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해도조차 없는 항해’였다. 
피폭한 지 11일째에 인공호흡기를 달고부터는 말조차도 할 수 없게 된 오우치의 고통. 그 오우치를 돌보는 의료진에게 가족이 보내는 신뢰. 현대 의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피폭의 무서움 앞에서 ‘이 사람에게는 의미 없는 고통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딜레마를 안은 채 치료의 길을 더듬어 찾는 의사, 간호사의 고뇌와 슬픔. 시시각각으로 ‘생명이 시들어가는’ 잔혹한 현실. 오우치의 83일은, 피폭된 뒤의 하루하루는, 원자력 발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리의 하루하루에 무엇을 묻고 있는가.

오우치는 나다, 내가 오우치다

도카이무라 임계사고가 일어나 오우치가 피폭한 지 11년 반이 지난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방사성 물질 누출 사고가 일어났다. 도카이무라 북동쪽으로 다시 110킬로미터쯤 떨어진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일어난 대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로 원전이 침수되어 전원 및 냉각 시스템이 파손되면서 핵연료 용융과 수소 폭발로 이어진 것이다. 54기에 이르며 전체 전력의 30퍼센트를 담당했던 일본 원전은 그로 인해 모두 가동 정지에 들어갔지만, 2014년 9월 센다이 원전 1·2호기가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안전심사를 통과하여 2015년 초에 재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리고 한국. 2015년 2월 27일 새벽 1시,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월성 1호기 계속운전 허가안’을 기습표결, 30년의 설계수명을 다한 국내에서 고리 원전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원전 월성 1호기의 수명을 8년간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은 현재 23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고, 11기를 더 지어올리고 있다. 규모로는 세계 5위, 단위 면적당 원전 시설 용량은 세계 1위다. 그리고 그린피스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 반경 30킬로미터 안에 거주하는 인구가 16만 명인데, 고리 원전 주변에는 부산 시민들을 비롯한 343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우리는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원전 자체에 대한 단순한 저항 또는 거부로 읽지 않기를 바란다. 원전 문제를 둘러싼 논의를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하고 있는 지금, 그것은 다소 섣부른 독해다.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다만, 방사선이 지닌 파괴력과 더불어 ‘그곳’에 사람이 있다는 단순하고도 분명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가능성을 고려하든, 원전에서 사고가 일어나면 누군가는 피폭한다. 그 누군가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오늘 하루의 삶을 꾸리는 사람이다. 오우치도 그랬다. 저 너머에 있는 누군가가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가 겪었거나 겪는 일이 나 또는 내 주변 사람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함께 더 나은 내일을 고민하고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 읽는 분들에게 이 책이 그러한 고민을 함께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면, 어떤 물음을 일게 할 수 있다면, 더할 수 없는 보람이겠다”.(옮기고 나서)


* 이 책에 대한 한마디


“원자력은 인류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구원하기도 하지만,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 이 책은 일본인 의사들이 오우치의 삶을 구하려는 숭고한 노력에 관한 이야기이자, 원자력을 다루는 과정에서 발생한 실수에 대처하는 인간 능력의 한계에 관한, 우리에게 경고를 전하는 슬픈 이야기다.”
―로버트 피터 게일/ UCLA 혈액종양내과 교수

“이 책은 방사선 피폭의 구체적인 작용과 방사선병과의 절망적인 싸움을 그리고 있다. 오우치 히사시의 죽음은 원자력 사고들이 결코 단순한 통계적인 위험이 아니라 생명과 직결된 직접적인 위험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독일어판 서문(에른스트 울리히 폰 바이츠제커)에서 





NHK 도카이무라 임계사고 취재반


이와모토 히로시 (岩本裕)

와세다 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1988년에 NHK 기자가 되어 보도국 과학문화부 데스크를 거쳐 의료 · 문화 담당 해설위원으로 근무한 뒤, NHK 방송문화연구소 부부장을 맡고 있다. 2001년 5월에 방영된 NHK스페셜 <피폭 치료 83일간의 기록―도카이무라 임계사고>는 제56회 문화청 예술제 텔레비전 부문 우수상과 제42회 몬테카를로 국제 텔레비전 페스티벌 뉴스프로그램 부문· 시사문제 프로그램 골드님프상을 비롯해 일본과 해외에서 많은 상을 받았다. 프로그램 취재를 바탕으로 『83일』을 집필했고, 이 책은 제2회 신초(新潮) 다큐멘트상의 최종 후보작에 오르기도 했다. 그 밖에 『일본의 암 의료를 묻는다』, 『의료 재건』 등을 썼다. 


신정원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일본외국어전문학교를 거쳐 전업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일본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동아시아사 전반에 관한 책들의 기획 및 번역에 힘쓰고 있다. 옮긴 책으로 『서양 정치사상사 산책―소크라테스에서 샌델까지』, 『실패 예찬』 등이 있다.





피폭, 1999년 9월 30일
첫 만남―피폭 2일째
도쿄대학병원 집중치료실로―피폭 3일째 
피폭 치료팀, 해도 없는 항해에 나서다―피폭 5일째 
조혈모세포 이식―피폭 7일째 
인공호흡기, 무언의 싸움―피폭 11일째 
여동생의 세포는……―피폭 18일째
잇따른 방사선 장애―피폭 27일째 
궁지, 그리고 아주 작은 희망―피폭 50일째 
제발, 다시 뛰어! 뛰란 말이야!―피폭 59일째
끝나지 않은 싸움―피폭 63일째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오우치 씨―피폭 83일째 
종이학
후기/ 옮기고 나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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