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와이파리의 백마흔아홉 번째 책이자, <오파비니아 시리즈>의 열세 번째 책,
『내 안의 바다, 콩팥』이 출간되었습니다.
내 안의 바다, 콩팥
물고기에서 철학자로, 척추동물 진화 5억 년
콩팥 없이는 척추동물의 진화도 없다!
조그마한 요구르트병 크기인 콩팥 한쪽의 무게는 고작 100그램이다. 1킬로그램이 넘는 간이나 1.5킬로그램의 뇌와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심장이 뿜어내는 혈액의 20퍼센트가 콩팥으로 들어온다. 하루 1,800리터이다. 그중 오줌으로 나가는 양은 고작 1리터가 조금 넘는다. 나머지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물론 혈액으로 다시 흡수된다. 험하고 건조하고 협소하기 짝이 없는 육상으로 기어오른 무모한 인류의 조상에게는 물을 지키는 사업이 절체절명의 일이었다. 콩팥은 물을 지켜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소금도 지켜야 한다. 바다를 떠나왔기 때문이다. 콩팥에는 바다를 떠나온 척추동물의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그 첫 단추는 물고기가 끼웠다.
‘업그레이드’된 물고기가 인간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배가 땅에 쓸리지 않도록 몸을 지탱하는 네발? 공기 중에서 숨쉴 허파? 맞을 것이다. 실제 3억 7,500만 년 전에 살았던, 어류와 양서류의 중간 단계인 틱타알릭은 지느러미가 변형된 네발과 원시 허파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만약에 콩팥이 진화하지 못했더라면, 우리의 물고기 조상이 육지를 넘보는 일은 절대로 없었을 것이다. 바다를 벗어난 척추동물이 민물과 육지로 올라오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콩팥이었다. 『내 안의 바다, 콩팥』은 물고기에서 인간에 이르는 다양한 척추동물들이 어떻게 콩팥을 정교하게 다듬어왔는지를 보여준다.
콩팥은 몸밖으로 나가야 할 노폐물, 특히 질소 노폐물을 내보내는 역할을 맡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생명체가 몸 담그고 있는 혈장, 즉 ‘내부 환경’을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다시 말해 포도당이나 나트륨 같은 염류와 더불어 몸속의 물을 지키는 것이 콩팥의 소임이다. 이렇게 내부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은 척추동물의 진화와 적응에 필수적인 일이었다. 원시 척추동물은 민물에서 진화했다. 물은 충분했지만 염류가 부족했다. 따라서 콩팥은 악착같이 염류를 지켜야 했다. 물고기는 민물에 적응했지만 무척추동물 포식자에 쫓겨 다시 바다로 혹은 뭍으로 올랐다. 어느 곳이든 콩팥을 재차 정비해야만 했다. 콩팥 없이는 척추동물이 새로운 환경에 진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말이다.
콩팥은 오줌만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를 만들어내는 기관이다
발 달린 물고기가 머리를 들고 물에서 뭍으로 올라오고, 양서류와 파충류와 포유류가 건조한 육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염류와 물을 몸밖으로 빼앗기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몸안의 노폐물을 내보내려면 물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염류가 물을 따라 나가는 건 당연지사였다. 척추동물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콩팥을 다양하게 진화시켜서, 파충류와 조류는 노폐물의 종류를 물이 적게 드는 요산으로 바꾸어버렸다. 반면 포유류는 노폐물을 고도로 농축시키는 데에 마침내 성공했다. 정온성을 획득한 포유류가 빠른 속도로 혈액을 여과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양한 콩팥 덕분에 육상 척추동물이 지구 위를 활보하고 생태자리를 넓혀갔다. 콩팥이 자신의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서는, 생명체가 살아남아 뼈나 근육, 뇌 같은 다른 기관을 진화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피상적으로 보면 콩팥이 하는 일은 오줌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보면 콩팥은 존재 자체의 철학을 만들어낸다고 볼 수 있다.
최초의 콩팥은 동물의 몸밖으로 연결된 가느다란 관들이었다. 이 관은 몸안의 비어 있는 장소인 체강에 달려 있었다. 그러므로 체강에 모인 노폐물이 관을 통해 몸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몸속을 돌아다니면서 노폐물을 체강으로 보내는 역할을 했던 모세혈관은 나중에 실타래처럼 뭉쳐져서 사구체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사구체와 관이 극적으로 맞닿는 사건이 벌어졌다. 마침내 네프론이 탄생한 것이다. 사구체에서는 혈액이 여과되고, 관에서는 여과된 물질의 재흡수와 분비가 이루어진다. 인간의 콩팥에는 이 네프론이 좌우 양쪽에 100만 개씩, 200만 개나 있다. 반면에 바닷물에 사는 일부 경골어류는 사구체를 버렸다. 물을 거의 마시지 않기 때문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금도 사구체는 사라지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
앨버트로스의 눈물과 홍탁
사구체가 사라지는 쪽도 있지만 과도한 염분을 몸밖으로 내보내는 특수한 기관인 소금샘을 발달시킨 생명체들도 있다. 원양어선을 쫓아 이레를 날 수 있다는 앨버트로스가 바로 그런 예이다. 커다란 날개를 가진 이 새는 불행히도 짠물과 역시 짠물고기 말고는 먹을 것이 없다. 여투어 물을 짜내고 남은 소금기는 콧등에 난 구멍을 통해 눈물처럼 떨어진다. 이런 앨버트로스의 눈물은 본질적으로 악어의 눈물과 다를 것이 없다. 악어도 소금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골어류인 홍어는 사뭇 다른 전략을 취했다. 자신의 몸에 요소를 잔뜩 쌓아 삼투압을 높여서 짜디짠 바닷물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흑산도 사람들이 홍어를 발효시키고 탁주 한 주발과 함께 콧등을 부여잡으며 즐겨 먹는 삼합은 이 요소 덕택에 가능했던 음식이다. ‘내부 환경’은 자못 문학적이고 풍류적이기도 하다.
콩팥의 진화를 일목요연하게 풀어낸 60년 전의 고전
지은이 호머 W. 스미스는 1939년 미국의 캔자스 대학에서 콩팥의 진화에 관한 자신의 연구성과들을 담은 강연을 했고, 그것을 정리한 『물고기에서 철학자로From Fish to Philosopher』가 출판된 것은 1953년의 일이었다. 그 뒤로 최소 두 버전의 책이 나왔는데, 원판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한국어판은 미국 자연사 박물관과 공동으로 편집한 1961년 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진화에 관한 책은 많지만, 간도 그렇고 폐도 그렇고 뇌도 그렇고, 특정 기관의 진화를 일목요연하게 다룬 것은 『내 안의 바다, 콩팥』이 유일하다. 이 책은 생명체가 짠물, 민물, 또는 뭍이라는 ‘외부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혹은 맞서 바다와 비슷한 ‘내부 환경’, 곧 ‘내 안의 바다’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온 콩팥의 진화 5억 년의 이야기를 담아낸 아름다운 고전이다.
지은이와 옮긴이 소개
지은이 호머 W. 스미스 Homer W. Smith
근대 생리학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호머 W. 스미스는 덴버 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고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대 의과대학의 학장이자 생리학 교수로 재직했다. 미국 국립과학원의 회원이었으며 미국생리학회, 미국생물화학회, 미국외과의사협회, 실험생물학 및 의학 학회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콩팥의 구조 및 기능에 관한 실험을 폭넓게 수행했으며 여러 편의 논문을 썼다. 지은 책으로 『카몽고Kamongo』, 『환상의 종말The End of Illusion』, 『인간과 신Man and His Gods』이 있다.
옮긴이 김홍표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약학대학 교수이다. 국립보건원 박사후 연구원과 인하대 의과대학 연구교수를 지냈으며 피츠버그 의과대학,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연구했다. 천연물 화학, 헴 생물학, 바이오 활성가스 생물학,자기소화, 면역학과 관련된 여러 편의 논문을 썼다. 연구분야와 관심분야는 기초 생물학과 진화생물학, 진화의학이다. 지은 책으로 『산소와 그 경쟁자들』이 있고 옮긴 책으로 『우리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진화와 의학』,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 『신기관』, 『제2의 뇌』가 있다.
차례
추천의 말
01 지구
02 진화
03 원시 척추동물
04 콩팥
05 연골어류
06 폐어
07 양서류
08 경골어류
09 파충류와 조류
10 포유류
11 물 없이도 사는 동물들
12 인간
13 의식
참고문헌과 부연 설명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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