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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소개

맹랑한 국어사전 탐방기

박일환 지음, 판형 140*210, 316쪽, 값 16,000원, 2020년 10월 05일 펴냄

 

 

1. 이 책은

국어사전이 맹랑하고

박일환의 탐방이 맹랑하고

앞일이 맹랑하다

그리고 재미있는 낱말들의 풍경과 속사정,

덤으로 훌륭한 공부의 길잡이

 

맹랑(孟浪)하다: 형용사(1) (무엇이) 생각과는 달리 이치에 맞지 않고 매우 허망하다. (2) (사람이나 그 언행이) 함부로 얕잡아 볼 수 없을 만큼 깜찍하고 당돌하다. (3) (일이) 처리하기가 매우 어렵고 곤란하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의 뜻풀이다. 30년 동안 국어교사 생활을 했던 시인이자 소설가 박일환이 여러모로 맹랑한책을 썼다.

 

봄볕가을볕은 붙여 쓰고 겨울 볕은 띄어 써야 한다?맹랑한 국어사전이로고!

이를테면, ‘저물녘은 합성어로 인정하여 붙여 쓸 수 있지만, ‘해질녘석양녘은 띄어 써야 한다(표준국어대사전). ‘봄볕가을볕은 한 낱말로 인정하지만, ‘겨울볕은 인정하지 않는다. ‘거시기는 표준어인데 머시기는 방언이다. 알타리무는 안 되고 총각무’, ‘오돌뼈가 아니라 오도독뼈’, ‘꼼장어가 아니라 곰장어로 써야 한다.

맹랑하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표준어와 비표준어를 가르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부정확하거나 불충분한 낱말풀이를 버젓이 달아 놨다. 쓰임새가 거의 없는 일본식 용어가 지나치게 많이 실려 있는 데다가, 사용자들의 언어생활을 반영하거나 말글살이의 영역을 넓히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낱말의 실제 쓰임새를 중시하는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역시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

사전에 있어야 할 말이 없는 반면, 없어도 되는 말은 너무 많다. ‘전선병’, ‘일기병’, ‘학교병’, ‘관찰포장’, ‘사고경성’, ‘조방적양식같은 낱말들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모두 일본에서 건너온 용어들이다. 언어순혈주의를 고집할 필요는 없지만, 국어사전에 일본에서 들어온 한자어를 무분별하게 싣는 건 문제가 있다.

국어사전 편찬자들은 쓰임새가 거의 없는 용어들을 포용하는 데 열심이면서도, 우리말을 풍부하게 하는 낱말을 되살리려는 고민이 부족하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만 실린 숨비소리우리말샘에 있는 해루질처럼 방언으로 분류되기 아까운 낱말들을 표준어로 인정한다면, 언중은 지금보다 훨씬 풍요로운 언어생활을 누릴 수 있지 않겠는가. 국어사전이란 편찬자들이 만든 말을 언중이 배워서 쓰도록 하는 게 아니라 언중이 쓰는 말을 편찬자가 찾아서 제 표기와 뜻에 맞도록 설명해 주는 게 존재의 이유.

 

어이쿠, -나으리가 많이 피었군맹랑한 탐방에서 거둔 열매들

저자 박일환은 그동안에도 미친 국어사전, 국어사전 혼내는 책등을 통해 국어사전을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해 왔다. 국어교사였고 시인, 소설가인 그는 여전히 국어사전을 벗 삼아 살고, 낱말들의 풍경과 속사정을 살피고 더듬는 그의 탐방은 맹랑하다.

어느 기자 이름이 눈에 띄어 혼잎을 검색해 보다가, 혼잎나물회잎나물과 동의어고 봄에 화살나무의 새순을 꺾어서 데친 다음 무쳐 먹는 나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음엔 자연스레 다른 나물의 이름으로 나아가는데, ‘참메늘치지리산에서 주로 나는 멧나물의 하나라고만 풀이되어 있다. 궁리 끝에 이 식물 이름에 흔히 붙는 접두어, ‘메늘며느리를 이르는 남쪽 지방 말이라는 걸 풀고, ‘참메늘치며느리취와 같은 말이라는 데에 이른다.

신이화(辛夷花)’개나리꽃의 비표준어인데, 일화가 흥미롭다. 독립운동가 월남 이상재 선생이 친일파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런 말을 꺼낸 적이 있다고 한다. “에이쿠, 신이화가 많이 피었군.” 신이화는 개나리를 가리키고, ‘나리나으리. 개 같은 나으리들이 많이도 모였던 것이다.

제대로 된 국어사전을 만들려면 아마도 완전히 갈아엎어야 할 테니, 맹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맹랑한 탐방은 어디선가 그 맹랑한 일로 이어질 것이다. 저자에게는 또 부실한 국어사전이 역설적으로 내 공부의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저자는 언젠가 잘못을 지적하는 맹랑한탐방기가 아니라 명랑한탐방기를 쓰고 싶다.

 

 

2. 지은이 소개

박일환

1992년 전태일문학상 단편소설 우수상을 받고 1997년에 내일을 여는 작가에 시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시집 푸른 삼각뿔, 끊어진 현, 지는 싸움, 등 뒤의 시간, 동시집 엄마한테 빗자루로 맞은 날, 청소년시집 학교는 입이 크다, 만렙을 찍을 때까지, 장편소설 바다로 간 별들을 냈다. 30년 동안 국어교사 생활을 하면서 진달래꽃에 갇힌 김소월 구하기, 청소년을 위한 시 쓰기 공부, 교육산문집 나는 바보 선생입니다와 교육시집 덮지 못한 출석부등을 썼고,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록한 빼앗긴 노동, 빼앗길 수 없는 희망과 역사에 발자취를 남긴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위대하고 아름다운 십 대 이야기를 펴냈다.

우리말 우리글에 대한 관심이 커서 국어선생님, 잠든 우리말을 깨우다, 미주알고주알 우리말 속담, 미친 국어사전, 국어사전 혼내는 책, 국어사전에서 캐낸 술 이야기등을 썼고, 퇴직 후에도 집필과 국어사전 탐방을 이어가고 있다.

 

 

3. 차례

책을 내며

 

1부 맹랑한 말들

얄개가 국어사전에 오른 이유

고막과 꼬막

비싸리구시가 뭐에 쓰는 물건인고?

이석태 씨를 찾습니다

황마차와 포장마차

물항라의 정체는?

마탕인가 맛탕인가?

화탕지옥이 국어사전에 실리지 못한 이유

담마진과 심마진

권구와 찜뿌

딩동은 우리말일까 외래어일까?

대인배는 잘못된 말일까?

민폐와 민생고

 

2부 안아야 할 말, 버려야 할 말

표준어와 방언의 관계

비표준어로 밀려난 말들

북한말에 대한 생각

비표준어와 북한말에 대한 보충

합성어를 인정하는 기준은?

외래어 표기에 대해

꼭 문법에 맞게 써야 할까?

이상한 일본 한자어(1)

이상한 일본 한자어(2)

이상한 일본 한자어(3)

이상한 일본 한자어(4)

용종(茸腫)과 선종(腺腫)

 

3부 호기심을 자극하는 말들

국어사전 편찬자들이 바빠야 하는 이유

대각미역의 정체를 찾아서

양식어업에서 쓰는 말들

아가미 탐구 생활

낚시꾼들의 은어

우수마발이라는 말의 유래

한자를 잘못 풀이한 낱말들

시간달리기와 중간달리기

중국 근대의 화폐 이름

흰 머리털이 나기 시작하는 나이

지팡이에 대한 탐구

조사 대상에 올라야 할 국어사전

수상한 법률 용어들

너무 많은 하나들

 

4부 수상한 먹거리들

금옥당과 양갱

감화보금과 가마보관

승가기와 승기악탕

보신탕의 다른 이름, 지양탕(地羊湯)

수상한 음식의 정체

낭화(浪花)와 승소(僧笑)

참메늘치라는 나물 이름

이건 어느 나라 죽일까?

남의 떡 훔쳐오기

거가필용(居家必用)에 실린 음식들

팔선고와 팔진고

약재로 쓰인 똥들

 

5부 동물과 식물 탐구하기

뱀이 흙덩이를 물고 잔다고?

개가 아니라 망아지

준마로 이름 떨친 말들

말을 잘 다루던 백낙과 왕양

국어사전에는 청마가 없다

백마는 말일까 아닐까?

사연과 제비행전

조복성박쥐

해당과 개아그배

등대시호와 등대풀

비짜루와 아스파라거스

감 속에 또 감이 들어 있다고?

신이화(辛夷花)라는 꽃

 

 

4. 본문 맛보기

이 책을 쓰면서 염두에 둔 건 비판서와 교양서를 겸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오류와 바로잡기의 단순 나열이 아니라 꼭지별로 읽어 가면서 낱말을 둘러싼 풍경과 배경지식을 탐색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 그런 의도가 얼마나 충실하게 반영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도 더해 주고 싶었다는 걸 밝힌다. 맹랑하다는 말은 듣기에 따라 혹은 사용하는 맥락에 따라 부정과 긍정의 어감이 엇갈려 든다. 그래서 제목에 붙은 맹랑한은 국어사전의 부실함을 지칭할 수도 있고, 그런 국어사전 탐방에 나선 나의 행동을 지칭할 수도 있다.(10)

 

표준어와 비표준어를 가르기 위한 국어사전 편찬자들의 기준이 있을 수 있고, 그런 필요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지나치게 무원칙한 처리도 바람직한 건 아닐 테니까. 다만 국어사전 편찬자들이 실제 사용자들의 입장에 서서 다시 한 번 고민해 보면 좋겠다. 그리고 비표준어로 몰아낸 말들을 표준어의 울타리 안으로 조금 더 과감하게 끌어들이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말이 더 풍부해지고, 말글살이의 영역도 넓어질 거라 믿는다. 그러고 보니 말글살이라는 말도 아직 국어사전 표제어에 오르지 못했구나!(81)

 

표준국어대사전을 펴낸 국립국어원은 합성어 인정에 매우 인색한 편이다. ‘신나다를 예전에는 신 나다로 표기해야 했고, 하나의 낱말로 인정받은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문제는 같은 형태인 신명나다’, ‘신바람나다같은 경우는 아직도 하나의 낱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두 낱말 모두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하나의 낱말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고려대한국어대사전 편찬자들이 합성어 인정 폭을 상당히 열어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94)

 

이처럼 문법은 고정불변이 아니라 실제 사용자들의 언어생활과 습관에 맞춰 얼마든지 변경이 가능한, 사후 승인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언어 사용자들이 문법을 무시하고 잘못 사용한다며 나무라고 다그치기만 할 게 아니라, 현실에 맞게 문법을 바꿔 주면 될 일이다. 그렇잖아도 우리말 문법과 맞춤법이 어렵다며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문법 공포증을 줄여 주는 일도 선행에 속하는 일이 아닐까? 규정을 바꾼다고 해서 경천동지할 만큼 큰일이 벌어지는 일도 아닐 테니 말이다.(107~108)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들여와 사용하던 말이 해방 후에도 한동안 남아 있었다. 그중에서 벤또, 쓰메끼리, 자부동처럼 누가 봐도 일본말이 분명한 건 국어순화운동을 통해 대부분 걸러졌다. 하지만 법률 용어를 비롯해 각종 전문어나 학술어는 뿌리 깊이 남아 있고, 국어사전 안에도 여전히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런 용어도 차츰 사라지거나 우리 식으로 고쳐 쓰고는 있지만 그 역할을 국어사전이 얼마나 제대로 담당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썩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125)

 

달랑 ‘~의 하나라고만 풀이해 놓은 낱말에 대해 모든 이야기를 하려면 한참을 더해야 하지만 여기서 줄이기로 한다.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지 풀이를 하지 못할 낱말이라면 아예 국어사전에 싣지 말았어야 한다. 그런 낱말일수록 앞에서 보았듯이 대부분 일반 사람들은 거의 쓰지 않는 말이며, 국어사전 편찬자들도 무슨 말인지 모른 채 그냥 가져다 실은 게 태반이다. 차라리 해당 분야의 전문 용어 사전에서 다루도록 양보했어야 한다. 낱말만 많이 모았다고 해서 좋은 사전이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곱씹어 보면 좋겠다.(206)

 

이 음식 이름들이 국어사전에 실리게 된 까닭은 서유구가 지은 임원경제지를 비롯한 우리나라 서적에 소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책에 소개된 것들은 우리 전통 음식도 있지만 중국 문헌에 나오는 걸 단순히 소개한 것들도 많다. 그리고 대체로 출처를 밝혀 놓았다. 그런데도 우리 문헌에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우리 음식인 것처럼 국어사전에 표제어로 올리는 건 문제가 있다. 올리더라도 정확한 출처를 밝혀서 오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253)

 

낭화라는 국수 이름은 절간의 스님들이 주로 사용하는 용어다. 화장실을 뜻하는 해우소나 술을 뜻하는 곡차처럼 스님들이 사용하는 독특한 어휘들이 있다. 해우소나 곡차 풀이에는 스님들이 사용하는 어휘라는 점을 밝혀 놓았다. 마찬가지로 낭화 풀이에도 그런 사실을 풀어서 밝혀 주면 더 좋았을 것이다.(229~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