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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소개

『한자본색』

장인용 지음|150*215mm|300쪽|2018년 12월 14일 펴냄|15,000원



‘사람 인人’은 노동하는 사람이다  

호랑이(虎) 몸통에는 줄무늬가 있고 개(犬)의 꼬리는 날렵하게 위로 향한다 

‘웃을 소笑’에는 대나무가 아니라 ^^이 있다 


갑골문과 금문으로 보는 한자 이야기 

어릴 적 수업시간에 ‘사람 인人’은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으므로 서로 기대 있는 모습이다’라고 배웠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갑골문이나 금문을 보면 그 생각은 그저 훗날 지어낸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人 금문) ‘사람 인人’은 옆모습을 그린 것이기도 하지만 굽은 어깨를 보면 노동을 하는 사람이다. 


‘클 대大’ 위에 동그라미가 얹혀 있으면, ‘하늘 천天’(天 갑골문)이다. 이 동그라미는 하늘을 뜻한다. 중국의 옛 관념에는 ‘천원지방天圓地方’, 곧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난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자인 ‘사람 인人’이 아니라 지배하는 대인大人인 ‘클 대大’를 쓴 것은 한자 형성기에 이미 계급 분화가 이루어졌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하늘 천天’의 갑골문 모양은 왜 둥근 하늘이 네모나냐고? 그것은 필기구 탓이다. 갑골문은 뼈에 새긴 글자로, 칼로 새겨 썼기에 둥그런 원을 그리기가 쉽지 않았다.  


갑골문은 은상殷商시대, 금문은 주周나라 때의 글자이다. 이러한 갑골문과 금문을 살펴보면, 동아시아 고대인들의 의식 세계가 대단히 직관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범 호虎’를 보라. 호랑이를 가리키는 글자(虎 갑골문)에는 호랑이 몸통에 그려진 섬세한 줄무늬를 볼 수 있다. ‘개 견犬’을 보라. ‘견犬’ 역시 영락없는 상형자(犬 갑골문)로, 긴 꼬리가 한 번 말려 위를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후의 문자화에 의해 상형의 원래 활발한 모습은 감춰지고 말았지만, 갑골문을 보면 옛사람들의 관찰력이 얼마나 치밀했는지 알 수 있다. 


이처럼 중국인들은 갑골문자를 통해 상고시대 자신들의 역사적 상상력과 미적 감각, 철학적 감성들을 발현하였다. 이 책은 한자의 원형인 갑골문과 금문을 통해 재미있게 그 연원들을 살펴 글자의 원리를 알고 익히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하였다. 



여전히 교양으로서의 한자 

중국 주위의 나라들은 서로 말은 달라도 한자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경우는 지식인 사회의 필수적인 언어 도구였다. 그만큼 우리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는 한자를 이해하고 익히는 것은 여전히 교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영어의 기원이라는 라틴어를 배우기가 쉽지 않듯이, 한자 또한 수많은 글자를 외워야 하므로 배우기 쉬운 것은 아니다. 게다가 동한東漢 때의 학자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른 한자의 부수와 ‘육서(상형, 지사, 회의, 형성, 전주, 가차)’까지 들이밀면 지레 겁을 먹고 막막해진다. 그러나 이런 것을 몰라도 한자를 교양으로 삼는 데는 문제가 없다. 사실 허신은 갑골문이나 금문을 본 적이 없고, 문자학은 갑골문의 발견과 왕국유王國維의 해독으로 급격한 발전을 이루기 시작했다. 


이 책은 태동기의 한자를 가지고 한자에 얽힌 본래 뜻을 배우며 흥미를 느끼고 한자를 교양으로 익혔으면 하는 저자의 의도에 따라 가능한 한 어렵거나 잘 쓰지 않는 글자들은 빼고 우리네 일상과 가까운 글자들만을 소재로 삼았다. 한자 공포증(포비아)으로 여전히 한자는 어렵기만 한 문자라고 여기고 있다면, 사물을 인식하고, 경험하고, 정형화한 동아시아 고대인들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서부터 한자를 다시 이해하고 익힐 수 있지 않을까. 


한자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늘 똑같은 의미와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한자는 변화하고 있다. 그만큼 한자의 글자와 뜻의 변화에는 인간의 수많은 삶과 경험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의미를 되짚어보면, 의외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지금도 여전히 한자는 우리의 말과 글을 적합하게 쓰는 데 도움이 된다. 곧 한자라는 교양을 튼실하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책은 교양으로서의 한자인 만큼 초등학생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다시’ 배우는 ‘한자 공부’가 될 것이다. 



대중적 글쓰기와 한자 공부

저자 장인용은 지호출판사의 대표로 있었다. 『연필』, 『의자』, 『설탕과 권력』 등 아날학을 국내 출판에 접목한 쟁쟁한 책들을 내며 인문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바로 그 출판사이다. 남의 책을 펴내는 출판인에서 직접 글을 쓰는 글쟁이로 변신하면서, 음식에 관한 인문학적 이해를 담은 『식전, 팬더곰의 밥상견문록』, 중국의 고대 제도와 조선의 건국을 조명한 『주나라와 조선』 등을 내놓았다. 이번에는 갑골문과 금문을 통해 한자의 이치를 깨닫게 하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한글세대를 위한 한자 이야기책 『한자본색: 옛 글자 이야기로 다시 배우는 한자』를 내놓았다. 중문학을 전공했으며, 국립대만대학 역사연구소에서 중국미술사를 공부할 때는 청동기 연구를 위해 2년 동안 청동기의 그릇 안에 새긴 명문銘文을 들여다본 이력답게, 인문학적 깊이를 담보한 천상 이야기꾼으로 태동기의 한자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능수능란하게 엮어 전개해가고 있다. 출판인으로서 대중적 글쓰기가 어떠해야 하는지 오랫동안 천착해온 저자와 함께 재미없고 어렵다고 여긴 한자의 ‘재미’와 ‘공부’ 두 마리 토끼를 구한다면 어떨까. 




지은이와 옮긴이 소개


장인용 

성균관대학교 중문과를 나와 국립대만대학 역사연구소에서 중국미술사를 공부했다. 출판사 뿌리깊은나무에서 일하다가 1995년 지호출판사를 세워 인문교양서와 과학교양서를 출간했으며, 현재는 자신의 관심 분야를 글로 쓰는 일을 하고 있다. 한자를 한글과 비슷한 시기에 배워 여태까지 살면서 한자가 한 번도 어렵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하는 특이한 사람이다. 중문학을 전공했으며, 미술사를 공부할 때는 청동기 연구를 위해 2년 동안 청동기의 그릇 안에 새긴 명문銘文을 들여다본 이력도 있다. 


세상의 잡다한 지식에 관심이 많아 분야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으며, 지은 책으로 음식에 관한 인문학적 이해를 담은 『식전, 팬더곰의 밥상견문록』, 중국의 고대 제도와 조선의 건국을 조명한 『주나라와 조선』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원세개』, 『그림으로 읽는 중국신화』, 『중국미술사』 등이 있다.




차례


머리말 


제1부

1. 둥근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별 

2. 땅은 네모나다 

3. 물이 있어 우리도 있다 

4. 불과 산 

5. 동물들하고 놀자 

6. 너무나도 유용한 식물들 


제2부

7. 사람, 남녀, 가족 

8. 손과 발 

9. 눈과 감각기관 

10. 영혼의 집, 세속의 집 

11. 마을, 성, 도시, 국가 

12. 실과 옷 


맺으며 292

찾아보기 294




본문에서


‘하늘 천天’의 모습을 살펴보면, ‘대大’ 위에 동그라미가 얹혀 있는 모양입니다. 이 동그라미는 바로 하늘을 뜻합니다. 중국의 옛 관념에는 ‘천원지방天圓地方’, 곧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갑골문의 글자는 동그라미가 아닌 네모 같다고요? 그것은 필기구 탓입니다. 갑골문은 뼈에 새긴 글자로, 칼로 새겨 썼습니다. 그렇기에 둥그런 원을 그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것도 최대한 동그랗게 그리려 노력한 것입니다. (17~18쪽) 


그래서 별을 표시하는 글자로 둥근 원만 다섯 개쯤 그려서 표시하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나무가 한 그루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 주위로 세 개쯤 별을 그리다가, 나중에는 한 개만 남았습니다. 그것이 요즘에 쓰는 ‘별 성星’입니다. 저는 나무에 걸린 별은 못내 아쉽습니다. 차라리 ‘밝을 정晶’처럼 주위에 아무것도 없이 빛이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 더욱 별의 정체성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대단한 건 ‘밝을 정晶’이나 ‘별 성星’이나 할 것 없이 ‘해 일日’로 표기한 것이죠. 그러니까 크기나 위력의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태양과 별은 똑같은 발광하는 항성임을 알고 있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항성과 행성까지는 구분하지 못했을지라도 갑골문이나 금문을 보면 그 시대 사람들의 천문학적 지식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32쪽) 


우리가 중국의 태평성대를 이야기할 때는 ‘요순堯舜시대’란 말을 씁니다. 요임금과 순임금이 다스리던 먼 옛날의 이상국을 뜻합니다. (……) 불을 쓰기 시작한 염제炎帝나 활과 화살을 발명한 황제黃帝처럼 요임금도 대단한 발명이 있습니다. 바로 도기陶器입니다. 흙을 빚어 불에 구워 도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바로 요임금이라는 전설입니다. 역사의 단계에서 도기의 발명은 신석기시대이고, 이때부터 농업과 문명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한자가 생성된 시기도 이때부터겠지요.

‘요임금 요堯’의 금문대전을 보면 위에 ‘흙 토土’ 셋이 있고 그 아래 ‘우뚝할 올兀’이 있지만, 원래 갑골문에는 앉아 있는 사람 위에 무슨 물건이 올라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요임금이 만든 도기라는 것이죠. 자신의 발명품이 요임금의 글자 위에 새겨져 있는 셈이죠. 이 도기의 발견은 인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 도기에 물과 식량을 저장하고 요리를 해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신석기시대의 혁명이라 부를 만큼 커다란 사건이었습니다. (46~47쪽) 


‘목욕할 욕浴’은 이렇게 훈을 달 일이 아니라 ‘몸 씻을 욕’이라 해야 정확한 뜻이 됩니다. 목욕의 ‘목’은 머리를 감는 행위를 뜻하니까요. 이 글자의 갑골문이 재미있습니다. 받침이 있는 큰 그릇 안에 사람이 들어가 있고, 사람 주변으로 물방울들이 뿌려지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요즘과 마찬가지로 욕조에 들어가 목욕을 한 겁니다. 이 갑골문들이 주로 은상殷商 시기의 문자라면, 그때 지배층인 은상 사람들은 당시로는 호사를 한 겁니다. 사람이 들어갈 큰 그릇에 물을 데워 목욕을 하기란 쉽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런데 주周나라 시절의 금문에는 글자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물은 있지만 그 옆에는 ‘골짜기 곡谷’이 있습니다. 산에서 골짜기는 물이 모이는 곳이니 개울이 흐릅니다. 거기서 몸을 씻는다는 것이지요. 금문은 주로 주나라의 문자입니다. 그러니 주나라 지배계층은 은상 사람들보다는 몸 씻을 물을 데우려고 아랫사람들을 고생시키지 않았나봅니다. (65~66쪽)


‘대나무 죽竹’ 아래 있지만 대나무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을 것같은 글자도 있습니다. ‘소笑’자의 아래 있는 ‘요夭’는 몸을 비트는 것의 상형입니다. 크게 웃을 때에는 입으로만 웃는 것이 아니라 온몸을 비틀기도 합니다. 우리가 ‘배꼽을 잡는다’란 것이 바로 이런 상태지요. 몸동작에 대한 상형에서 나온 글자입니다. 헌데 이것만으로는 웃음을 묘사하기 부족해서 한 가지 요소가 더 있었습니다. 몸을 비트는 ‘요夭’ 옆에다 웃는 모양의 ‘입 구口’를 써서 웃음소리를 표현한 것이 한 가지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비트는 몸 위에다 이지러진 눈썹을 표현한 것입니다. 대충 요즘의 ‘^^’와 같은 이모티콘을 생각하면 됩니다. 이것이 나중에 모양이 비슷한 편방인 ‘죽竹’으로 변하게 된 것이고, ‘입 구口’ 자가 달린 글자가 도태하고 이것이 남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 글자는 처음부터 대나무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던 겁니다. 평범한 것보다는 재미있는 표현이 살아남게 마련입니다. (145~146쪽)


이런 모든 사실을 보면 ‘부호’의 집안은 그냥 보통의 집안은 아닌 겁니다. 특히 제사의 집전이나 점복과 같은 일은 당시 최고 계층의 집안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여자의 몸으로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나섰다는 것은 무정의 집안과 대등한 실력을 갖춘 가문이었다고 보아야 할 겁니다. 그러므로 이 ‘부婦’의 의미는 제사와 점복과 관련하여 여자가 사용하는 필수적인 도구였던 것 같고, 이 집안은 대대로 제사의 의례에 익숙했던 듯싶습니다. 어떤 학자는 이 띠풀 묶음이 제사를 지내는 제실祭室에 술을 뿌리는 도구였다고 하기까지 합니다. 정확한 용도는 모르지만 제사용 도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가로대는 현세와 이승을 구분하는 영역의 표시인 듯합니다.

그런데 이 집안은 은상의 왕들과 대대로 혼인을 하는 관계였습니다. 은상의 부인들 가운데는 언제나 ‘부호婦好’가 있었다는 뜻이지요. (159쪽)


‘집 가家’가 그렇습니다. ‘가족家族’, ‘가정家庭’처럼 흔히 쓰이는 글자고, 또 우리네 사는 집을 말하는데 글자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사람 인人’이 아닌 ‘돼지 시豕’입니다. 그걸 사람이 사는 집을 뜻하는 글자로 쓰다니요. 이것을 어떻게 바꿔보려 개를 데리고 산 것 아니냐고 하기도 하는데, 금문의 어떤 글자는 돼지임이 너무도 분명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 그래서 추측으로는 ‘집 가家’는 사람이 살기 위한 집이 아니라 왕족이나 큰 가문의 제사를 올리기 위한 제례용 집이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왕이나 유력한 집이라면 자연에 대한 국가적인 제사 이외에 자신들의 조상이나 후손의 안녕을 위해 돼지 같은 짐승을 잡아 사사로운 제사를 지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묘廟’와는 다른 종류의 제사를 위한 집이 따로 있었을 가능성이 있고, 이 집은 대체로 사는 집의 중심이었을 수도 있겠죠. 그러다가 이 글자가 차츰 제사를 지내는 집의 의미가 퇴색하고 보통의 집을 이르는 말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가家’는 본래는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닌 영혼이 사는 집이었을 겁니다. (232~234쪽) 


그러기에 제사를 지내는 권리가 중요했고, 제사를 지내는 권리를 지닌 사람은 그 권리와 함께 재산도 상속相續받았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데는 재물이 필요하니 재산도 물려주는 것이지요. ‘이을 속續’에는 이런 뜻이 깃들어 있습니다. 실처럼 자자손손 대를 이으면 제사를 지냅니다. 제사는 제물로 지내는 것이니, 제사를 이을 사람을 마주하고 눈썹을 치켜뜨고 재산을 물려주며 ‘너를 제사를 지낼 사람으로 정했으니 내 제사를 부탁한다’고 하는 겁니다. ‘팔 매賣’는 여기서 그런 돈을 주는 일을 뜻하는 글자이고, ‘실 사糸’는 아버지와 아들로 이어지는 연속성을 뜻합니다. 사실 이즈음은 농업과 전쟁의 시대이기에 가부장제로 완전히 재편되던 시기였습니다. (284~28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