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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소개

『식민지 조선의 시네마 군상』

뿌리와이파리 2019. 9. 24. 13:35

시모카와 마사하루 지음 | 송태욱 옮김 | 150x225mm
340쪽 | 2019년 9월 20일 펴냄 | 18,000원
[상세 정보]

 

 

이 책은…

압록강 국경 지대를 배경으로 한 조선 웨스턴 활극 <망루의 결사대>, 
스러져가는 수원 화성, 소학교의 일상, 추석을 맞은 마을 농악대를 담은 로드무비 <수업료>,
종로 뒷골목 부랑아들과 화신백화점 옥상의 화려한 전광뉴스판으로 대조되는 <집 없는 천사>, 
영화에 새겨진 일제시대의 기록과 당시 사회상과 삶을 복원한 식민지 조선의 풍경! 

이 책은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조선 영화에 대해 일본의 전 신문기자가 쓴 첫 책이다. 근대 미디어의 대표 격인 영화가 식민지 조선에서 어떻게 제작되고 또한 무엇을 담아냈는가를 연구하고 서술했다. 조선의 감독이나 배우, 스태프, 제작자의 궤적을 통해 한국(조선)과 일본 동시대의 실상을 확인하는 취재기이기도 하다. ‘한국 영화 100주년’을 맞이하여, 활자로만 알았던 ‘근대 조선’, ‘식민지 조선’, ‘전시체제하의 조선’을 기록한, 전쟁과 근대의 프로파간다에 활용된 미디어로서의 영화를 통해 식민지기 조선과 조선인의 일상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이마이 다다시今井正 감독의 <망루의 결사대>(1943) 외에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발굴된 과거’ 시리즈로서 DVD가 출시된 최인규 감독의 <수업료>(1940), <집 없는 천사>(1941), 이병일 감독의 <반도의 봄>(1941)을 중심으로 영상과 시대를 검증하고 있다. 제1부 ‘<망루의 결사대>의 미스터리’에서는 하라 세쓰코와 이마이 다다시의 진실, 공산주의자인 조선인 배우 주인규의 파란만장한 생애에 다가갔다. 제2부 ‘조선 시네마의 빛’에서는 조선인 소학생의 작문을 원작으로 한 <수업료>와 경성 거리를 떠돌던 부랑아들의 처지를 다룬 <집 없는 천사> 등을 시대 배경과 함께 살피고 있다. 나아가 여배우 김소영의 생애를 중심으로 비운에 가득 찬 조선 영화인의 동향을 살피고, 리샹란(李香蘭, 야마구치 요시코山口淑子) 등 일본인 여배우와 교류한 기록을 발굴했다.

<망루의 결사대>에는 왜 조선어로 부르는 <도라지 타령>이 나올까?
1943년 국책영화로 개봉된 <망루의 결사대>는 웨스턴 활극, 압록강 국경,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배경으로 전후 영화를 대표하는 ‘영원한 처녀’ 배우 하라 세쓰코가 주연하고, 전후 ‘민주화’ 영화로 유명한 이마이 다다시가 감독했다.


영화 화면에는 주재소 안에 붙은 ‘국어(일본어) 상용’이라는 표어가 빈번하게 비친다. 그런데 조선인끼리 조선어로 대화를 나누고 일본인 경관과 조선인 순사의 잔치에서는 조선어 민요를 낭랑하게 노래한다. 마을 학교에서 조선인 유 선생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일본어이지만, 주재소의 일본인 순사는 조선어가 능숙하다.


1943년 말 조선에서의 일본어 보급률은 22.15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조선총독부 제86회 제국의회 설명 자료). 한편 조선어를 할 수 있는 일본인 공무원도 사실 적지 않았다. 조선국세조사 보고에 따르면, 1930년 기준으로 재조선 일본인 52만 7016명 중 일본어와 조선어를 다 읽고 쓸 수 있는 일본인은 3만 2714명(6.2퍼센트)이었다. 이를 거주지별로 보면 군 지역 일본인 남성의 11.0퍼센트는 일본어와 조선어를 둘 다 읽고 쓸 수 있었다고 한다. <망루의 결사대>의 일본인 경관이 직무상 조선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은 예외적인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또 하나. <망루의 결사대>에서는 왜 조선 민요 <도라지 타령>을 조선어로 낭랑하게 노래하는 장면이 그려졌을까. 검열 책임자인 조선군 보도부장 구라시게 슈조倉茂周蔵(육군 소장)가 이 수수께끼를 풀 열쇠를 제공한다. “우리는 조선인에게 황국신민이 되려면, 모름지기 ‘다꽝(단무지)’을 즐겨 먹으라는 촌스러운 말은 하지 않는다.” ‘제국 내의 지방색’으로서 조선의 민속이나 풍물을 그리는 것은 피할 일이 아니었고, 이는 식민지 시대 조선 영화가 담고 있는 포인트 중 하나다.

 

『한국영화사—개화기에서 개화기까지』에서는 윤봉춘 감독의 <신개지>(1942)를 마지막으로 조선어 영화는 금지되었다고 기술한다. 그러나 1943년에 공개된 조선과 일본의 합작 영화 <망루의 결사대>에서는 여전히 조선어 대사나 노래가 영상화되었다. 즉 영화관이라는 공적 시설에서 상영되어도 영화와 관객의 사적 커뮤니케이션이 감소되는 일 없이 현실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방법론이 모색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1944년, 45년이 되면 대사는 모두 일본어로 바뀌고, 패전으로 치닫는 ‘대동아전쟁’에 복무하는 게 급선무였다.

그 시절,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 조선의 첫 아동영화, <수업료>
2014년 9월 한국영상자료원은 <수업료>(1940)의 “필름이 6월 베이징의 중국전영자료관 창고에서 발견되었다”고 발표했다. 해방 전 조선에서 제작된 극영화 157편 중 필름이 발견된 것은 15편밖에 안 된다. <수업료>는 그중 다섯 번째로 오래된 영화다(<수업료>는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다). 

 

원작은 조선인 소학생의 작문이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의 자매지인 『경일소학생신문』이 모집한 제1회 작문 공모(1938)의 응모 작품 가운데 하나로, 조선총독부 학무국장상을 받은 전라남도 광주 북정공립심상소학교 4학년 우수영의 작품이다(1등상인 총독상은 일본인 소학생이 받았다). 1938~39년에 이루어진 작문 공모의 작품들은 『전 조선 선발 소학교 작문 총독상 모범 문집』 전2권으로, 현재 한국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다 쓰러져가는 성문이 있는 지방 도시 수원을 무대로 한 로드무비이다. 원작은 전라남도 광주이지만, 영화의 무대는 경성 남쪽인 수원 화성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 화성의 당시 모습이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식민지 조선의 가난한 소년에게 수원에서 평택으로 가는 도보 여행은 소비사회와 군국 일본을 동반하는 괴로운 여행이기도 하다. 그는 일본의 군가로 외로움을 달래고 ‘모리나가’ 밀크캐러멜로 위로를 받는다. 도보 장면은 어느 시대에나 보편적인 ‘소년의 여행길’을 상징하는 것이지만 최인규가 담아낸 서정적인 영상은 식민지 조선에 수없이 많았을 시련을 표상하여 특히 깊은 감명을 준다.

발굴된 과거, 복원된 영화·영화인
무성영화 시대의 나운규 감독을 중심으로 하는 영화 제1세대와 달리, 1910년 전후에 태어난 유성영화 시대의 조선영화 제2세대는 해방 이후 한국, 북한(월북, 납치), 일본, 미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그 파란만장한 삶을 마무리하였다.  

 

해방 전후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수업료>, <집 없는 천사> 등의 뛰어난 작품을 연출한 최인규는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제자인 신상옥 감독이 납북되었을 때 스승 최인규의 생사를 가장 먼저 확인했지만 이미 고인이었다고 한다). 주인규는 흥남공업지대의 인망 있는 노조 활동가로, 배우 경력을 겸비한 흔치 않은 인물이다. 이후 월북했지만, 당내 종파사건으로 조사 중 자살했다. 김소영은 박복한 여배우였다. 문예봉, 김신재와 함께 조선의 3대 여배우 중 한 명이었지만, 다른 두 사람이 ‘정숙한 아내’, ‘황국신민의 누이’의 이미지였던 것과 대조적으로 김소영은 ‘추문의 여배우’였다. 해방 후 전남편 추민은 월북하고, 재혼한 조원택과 미국으로 이민을 간 후 이혼, 로스앤젤레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2006년부터 디렉터로서 ‘한일 차세대 영화제’를 개최하며 조선 시네마를 일본에 소개하는 데 힘써온 저자 시모카와 마사하루는 식민지 조선의 격동기를 살아간 영화인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훑는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의 낙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 그럼에도 오로지 영화에 자신의 삶을 걸었던 ‘영화인’들에 대한 저자의 상찬은 그 휴머니즘적 시선으로 더욱 빛난다. 한국어 구사에 불편함이 없는 언론인다운 관찰과 열정의 기록인 이 책이, 한국영화 100년을 맞는 올해, 그리고 10월에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즈음하여 나온 것은 그래서 의미 깊다. 


추천사


시모카와 마사하루의 『식민지 조선의 시네마 군상』은 1940년대 전후의 식민지 조선의 이른바 국책영화와 여기에 동원된 두 나라의 영화인들을 중심으로 언급한 역저로서, 그의 균형 잡힌 역사의식과 노력, 간결한 문장이 돋보인다. 한국영화 100년을 맞는 올해에 이 책이 나오게 돼 더욱 의미가 있다.  
—김종원(영화사학자・평론가)

해방 전후 식민지 조선에서 만든 국책영화들은 오랫동안 한국과 일본에서 잊혀 있었다. 이 책은 어둠의 심연에서 보물을 찾아내듯이 각 영화의 내용뿐만 아니라 제작자(감독)와 출연진(배우) 등에 얽힌 주옥같은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헤쳤다. 한 편의 영화처럼 스릴 넘치는 이 책이야말로 한국과 일본 현대영화사의 서막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읽어야 할 입문서다.  
—정재정(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전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제1부는 조일합작 <망루의 결사대>(1943), 전후 일본의 좌파 영화감독 이마이 다다시의 작품이다. 이마이는 이 영화를 회고하지 않았다. 전쟁협력영화라 부끄러웠는지도 모른다. 조선 쪽에서 참여한 영화인들의 인생은 놀랄 만큼 기구한 운명을 보여준다. 최인규는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 배우 주인규는 활력 넘치는 공산주의자로, 해방 후에는 북한에서 관료로 두각을 드러냈으나 권력투쟁에서 패배, 자살했다. 영화와 영화인, 그리고 당대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 역작이다.
—야마타니 데쓰오山谷哲夫(다큐영화 <오키나와의 할머니> 감독)

왜 기억하는 것인가. 그 ‘왜’가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공포.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우리는 과거를 늘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저자와 같은 독실한 탐구정신을, 일본인이 아직 잃어버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한국 독자들이 알아주시기를. 
—요모타 이누히코四方田犬彦(전 메이지가쿠인대학 교수, 영화・비교문학 연구가)


저자·역자 소개


지은이 시모카와 마사하루下川正晴
1949년 7월 가고시마현에서 태어났다. 오사카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릿쿄대학 대학원 박사과정 전기(비교문명론)를 수료했다. 『마이니치신문』 서부 본사, 도쿄 본사 외신부를 거쳐 서울지국장, 방콕지국장, 편집위원, 논설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한국외국어대학 언론정보학부 객원교수, 오이타현립예술문화단기대학 교수(매스미디어론, 현대 한국 연구)를 지냈다. ‘한일 차세대 영화제’의 디렉터를 맡았고, 2015년에 정년퇴직하고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근현대사, 한국, 타이완, 영화를 중심으로 취재와 집필을 하고 있다. 저서로 『나의 코리아 보도』, 『망각의 귀환사』가 있고, 논문으로는 「체험적으로 본 ‘위안부 보도’론」, 「저널리스트가 본 일한 관계 50년」 등이 있다.

옮긴이 송태욱
연세대학교 국문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쿄외국어대학교 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 대학에서 강의하며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르네상스인 김승옥』(공저)이 있고, 옮긴 책으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비롯한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과 『환상의 빛』 『눈의 황홀』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살아야 하는 이유』 『사명과 영혼의 경계』 『금수』 『밀라노, 안개의 풍경』 『말의 정의』 등이 있다.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으로 57회 한국출판문화상(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차례 

한국어판 서문
머리말 

제1부 <망루의 결사대>의 미스터리
제1장 만주·조선 국경의 국책영화 
제2장 하라 세쓰코와 이마이 다다시의 수수께끼 
제3장 전쟁과 해방, 그 후 

제2부 조선 시네마의 빛
제1장 베스트 시네마 <수업료> 
    —「수업료」 원문(전라남도 광주 북정공립심상소학교4 학년 우수영)
제2장 <집 없는 천사>의 추락 
제3장 ‘해방’ 전후의 조선 시네마 

후기 
연표 | 조선 시네마의 사회문화사 1935~45 
조선 시네마 인물 사전 
주요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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