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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국판|400쪽|2018년 6월 16일 펴냄



“검사의 구형 ‘징역 3년’은 그 ‘지식인’들이 만든 것이었다”


―『제국의 위안부』 비판/비난에 대한 반론, 

  그리고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던지는 근본적 질문!



왜, 학술공간과 광장이 아니라 법정인가?

“『제국의 위안부』 고소고발 사태란, 정말은 학술공간에서 이루어졌어야 할 논의를 그렇게 법정에서 이루어지도록 만든 사태이기도 하다. 나에게 비판적이었던 한일 ‘지식인’들은 이 기간 동안 나를 공론의 장에 부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재판도 대중의 마녀사냥적 비난도 방관했다. (…) 이 책은 학계가 만들어주지 않았기에 내가 직접 만든, ‘공론의 장’의 첫 시도다.”(6쪽)


2014년 6월 16일, 위안부 할머니 아홉 분의 이름으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민형사 고소와 함께 ‘출판금지… 등 가처분신청’을 당했던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교수가, 피소 4년을 맞아 그동안 진행되어온 소송의 배경과 과정을 정리한 책 『<제국의 위안부>, 법정에서 1460일』과 피소 전후로 한국과 일본, 법정과 학계 안팎에서 나왔던 학자들의 비판에 대한 반론을 담은 책 『<제국의 위안부>, 지식인을 말한다』를 동시에 내놓았다. 

2018년 6월 기준으로,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형사소송은 ‘1심 무죄, 2심 유죄―벌금 1,000만원’을 거쳐 대법원에 상고 중, 가처분신청은 2015년 2월에 ‘일부 인용’ 결정이 나와 박유하 교수와 출판사가 ‘이의신청’과 함께 ‘제2판 34곳 삭제판’을 발행, 민사 손해배상청구소송은 1심에서 ‘원고 1인당 1,000만원의 손해배상’ 선고를 받고 항소 중이다.


그 지식인들은 그저 기존의 운동과 연구를 지키려 했다

그런데 이 소송에 관해 생각하기 위해 반드시 확인해두어야 할 사항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소송의 주체는 과연 누구인가?

둘째, 『제국의 위안부』는 정말로, 원고 측과 검찰이 주장하는, “강제연행을 부정하고, 위안부를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라고 한 책”인가? 

셋째, 형사 1심 무죄 판결이 말해 준 것처럼 그게 아니라면, 원고 측과 검찰은 도대체 왜 박 교수를 고소고발하고 기소했는가?

고소고발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기초적인 사항에 대한 확인 없이 원고와 검찰의 주장만을 믿고, 책을 읽지 않은 채로, 혹은 확증편향적인 읽기를 통해 박유하 교수를 비난해왔다. 하지만 『제국의 위안부』 소송에 대해 말하려면 이 세 가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먼저 필요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관심도에 비해 너무나도 척박한 한국의 위안부 문제 연구 정황(우리의 ‘위안부 문제’ 이해는 사실 일본인들의 연구에 90퍼센트 이상을 의존해왔다)에 안타까움을 느낀 저자가 스스로 연구하고 고찰/사유 결과를 발표했을 뿐인 한 권의 책이 민형사 고소고발 대상이 되고 국가에 의해 기소당하는 사태가 되었을 때 ‘지식인’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그리고 그 이전에 어떻게 관여했는지이다.

저자 박유하 교수는 말한다. 

“나는 위안부 할머니의 ‘다른 목소리’를 대변했을 뿐이다.”

“그들은 그저 기존의 운동과 연구를 지키려 했다.”

“검사의 구형 ‘징역 3년’은 그 ‘지식인’들이 만든 것이었다.” 

고소고발 이후, 수많은 언론과 대중과 정치가와 학자들의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그 중심에는 기존 위안부 문제 관련 운동가와 학자와 페미니스트들, 말하자면 위안부 문제에서의 주류 관계자들이 있었다. 국가에 의한 개인의 처벌에 그들은 직간접으로 가담했고,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이들의 주장과 같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 터이면서도 아무도 과도한 대중의 비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물론 소송 자체를 취하하라거나 박유하 교수에 대한 공격을 멈추라고 말하는 이도 없었다. 그들은 때로, “법정에 가는 건 반대하지만, 책은 엉터리”라는 그럴듯한 표현으로 엉터리 학자 이미지를 유포하거나, 한발 더 나아가 “일본 우익”이며 “나치”며 “아이히만”과 비슷한 인물로 취급하거나, 그런 말로 비난하는 이들을 방치하는 방식으로 가담했다.


‘위안부 문제의 현재’와 지식인

이 책은 ‘나눔의집’이라는 지원단체의 이면에서 ‘지식인’들이 이 소송에 어떤 식으로 관여하고 지탱해왔는지를 고발한다. 그리고 단순한 반론을 넘어 ‘지식인’들의 어떤 사고가 그런 비판을 만들었는지를 분석한다. 저자는 말한다. 이른바 ‘지식인’들조차 자신의 ‘상식’에 기대어 비판/비난에 나섰는데, 그들은 낯선 연구 방법을 만났을 때 “유보”하는 자세를 몰랐다고. 

사실, 『제국의 위안부』는 역사학계의 문서중심주의와 정형화된 피해자모델중심주의에 대한 첨예한 비판이기도 했다. 일본에서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던 것은 그 결과로서의 새로운 시각에 대한 공감이 만든 것이었고, 학계에서는 전문분야를 넘어 많은 학자들이 그 시도의 첨단성을 상찬했다. (『대화를 위해서-<제국의 위안부>라는 물음을 펼치다』 참조) 

몇 년 전부터 서구/일본학계에서는 그간의 위안부문제연구와는 다른 시각으로 쓰여진 연구가 나오고 있다. 책 말미에 저자는 금년 2월 일본에서 나온 ‘전쟁과 성폭력의 비교사를 향해서’라는 제목의 학술서를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제국의 위안부』를 쓰게 만든 것도 바로 이런 인식이었다. 『제국의 위안부』에서 인용한 증언들을 ‘예외’로 치부하고 싶어하거나, 한발 더 나아가 거짓말로 생각하고 싶어했던 학자들의 비난은, 결국 이런 부분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결과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다시 말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지 않고 ‘위안부 문제’와 한국사회의 ‘지식인’에 대해 논할 수는 없다고.



지은이 소개


박유하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게이오 대학과 와세다 대학 대학원에서 일본문학을 전공하고, 「일본 근대문학과 내셔널 아이덴티티」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에서는 아직 무명이었던 오에 겐자부로와 가라타니 고진 등 현대 일본의 지성을 번역, 소개하는 한편 일본 근대문학을 ‘다시 읽는’ 작업을 해왔다. 민족주의를 넘어선 대화를 모색하는 한일 지식인모임 ‘한일, 연대 21’을 조직하는 등 탈제국/탈냉전적인 시각에서 동아시아의 역사화해를 위한 연구와 활동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 세종대 일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반일민족주의를 넘어서』,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나쓰메 소세키로 읽는 근대』,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 『귀환문학론 서설引揚げ文学論序説』(일본어)과 공편저 『한일 역사인식의 메타히스토리』 등이 있다.



차례


들어가면서


제1부 반발에서 피소까지  

1. 서경식의 공격  

2. 발간 직후의 서평  

3. 가부장적 오만의 비판문법

   ―이재승의 『제국의 위안부』 비판에 답한다  

  1) 감정적 ‘혼란’의 연원―가부장적 사고와 법지상주의

  2) 논지 비판에 대해

  3) 책임과 포지션

  4) 책임이란 무엇인가

4. 박노자의 공격  

  1) 페이스북에서의 논쟁

  2) 박노자에 대한 추가답변

  3) 정영환의 『무엇을 위한 ‘화해’인가』 「해제」에 대해―짜깁기와 정치성


제2부 피소 이후  

1. ‘세계’의 인식과의 싸움―『제국의 위안부』를 말한다  

2. 인식은 어떻게 폭력을 만드는가―서경식의 비판에 대해 

3. 기억의 정치학을 넘어서―『제국의 위안부』 피소 1년  

    1.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인식의 변화

    2. ‘세계의 생각’의 편향된 이해

    3. 역사와 마주하는 방식


제3부 비전문가들의 헤이트스피치 

1.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1965년체제―정영환의 『제국의 위안부』 비판에 답한다 1  

    1. 오독과 곡해―정영환의 “방법”

    2. “방법” 비판에 대해서

    3. 『화해를 위해서』 비판에 대해서

    4. 정영환의 잘못된 이해

2. 비판이 지향하는 곳은 어디인가?―정영환의 『제국의 위안부』 비판에 답한다 2

    1) 민족과 젠더

    2) 전후/현대 일본과 재일교포 지식인

    3) 지식인의 사고와 폭력

    4) 비판과 포지션

3. ‘젊은 역사학자’들의 비판에 대한 반론  

    1. 비판 방식에 대해     2. 비판 내용에 대해    3. 비판 태도에 대해

4. 누구를 위한 거짓말인가

   ―정영환의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에 대해   

    1. 정영환의 비판과 한국의 언론보도

    2. 정영환의 비판의 근본적 문제

    3. 오류와 거짓말

5. 헤이트스피치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  

    1. 의구심 

    2. 비판의 양상

    3. 식민지 트라우마

제4부 위안부 문제 연구자/운동가/페미니스트의 개입

1. 김부자―의도적 혼동과 왜곡  

2. 양징자―관리되는 ‘위안부’의 감정  

3. 이나영―페미니즘의 ‘퇴락’ 

4. 김창록―가치 결정 주체로서의 가부장주의

5. 양현아―가부장제가 허락한 페미니즘  

6. 정희진―페미니스트의 오류  

7. 박경신―가부장적 국가주의  

8. 임경화―이데올로기의 정치  

9. 강성현―의구심이 가 닿는 곳  

제5부 도쿄 대학 3·28 연구집회에 답한다 

1. ‘위안부’ 할머니들이 고소고발의 주체다  

2. ‘형사조정’의 기회를 주었다  

3. 고소 사태와 정대협은 무관하다  

4. 일본(군)의 책임을 부정했다  

5. 선행연구를 무시했다  

6. 사료가 아닌 (일본인 남성의) 소설을 사용했다  

7. 자료를 조작했다  

8. 자의적이다  

9.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이 다르다  

10. ‘동지적 관계’는 없다  

11. ‘강제연행’을 부정했다  

12. 전략적 한일화해론이다  


에필로그  

부록: 탄원과 성명  

1. 『제국의 위안부』 가처분신청 기각을 요청하는 탄원 성명서(2014. 7.)

2. 일본·미국 지식인 67인, 박유하 교수 기소에 대한 항의성명(2015. 11.)

3. 『제국의 위안부』 형사 기소에 대한 지식인 194명 성명(2015. 12. 2.)

4. 패소 이후 『제국의 위안부』 소송 지원 동참 호소문(2017. 12. 7.)



본문에서


그런 목소리들이 그동안 나오지 못했던 이유는, 들으려 하는 이들이 없었고, 한발 더 나아가 다른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는 억압을 발화자 자신들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영환이 주장하는 “증언의 찬탈”은 오히려, 정영환 같은 태도와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에게서 곧잘 일어나곤 한다. 나는 이 책에서 그 점을 지적했고, ‘위안부’를 억압했던 이들이 나를 억압하기 시작한 것이 고소고발 사태였다. 따라서 나의 “방법”이 “윤리와 대상과의 긴장관계를 놓친 방법”이며 “역사를 쓰는 방식으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은 정영환이 연구 대상에 대한 나의 접근 “방법”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음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122쪽)


이재승은 2015년 여름에 발표한 글에서도 내가 “국가의 규범 침해도 부정하고 국가의 직접적 책임도 부정한다”면서 나를 비판했다. 그러나 나는 ‘직접 책임’을 부정한 적이 없다. (…) 이재승은 그런 진실부터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법’에 기대어 모든 문제를 판단하는 방식의 한계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위안부’들은 징병 등의 대상이 된 남성은 물론, 간호부 등 다른 여성들에게는 적용된 국가의 시혜적인 ‘법’의 외부에 놓여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일’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만든 일이고 결국 계급의 문제라는 점을 이재승의 ‘법지상주의’는 깨닫지 못한다.(33쪽)


박노자는 앞서 우크라이나와 일본을 아무런 근거 없이 결부시켰던 것처럼, 한국와 일본을 아무런 맥락 없이 갑자기 동일시하는 것이다. (...) 박노자는 기금이나 총리의 편지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에 대해 『제국의 위안부』에 쓴 내용은 완벽하게 간과하거나 무시한다. 그가 무시하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 그의 머릿속의 “대한민국=깡패=일본”이라는 근거 없는 억측뿐이다. 그런 거친 규정이 그로 하여금 『제국의 위안부』를 “깡패국가 일본국을 용서하라”는 책이자 “결국 깡패국가 대한민국에 대한 긍정적 수용을 의미”하는 책으로 간주하도록 만드는 듯하다.(66쪽)


물론 그것을 보는 이유는 일본의 책임을 희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안부’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다. 정영환의 비판이 순수한 의문을 벗어난 곡해 수준의 것이라는 사실은, 수요를 만든 행위 자체, 즉 전쟁을 일으킨 것 자체를 비판하는 나의 글을 인용하면서 “위의 인용은 어떻게 보면 공급이 따라갈 정도였다면 군 위안소 제도엔 문제가 없다는 의미로도 읽을 수 있”(481)다는 지적에서 명료하게 드러난다. 심지어 “업자의 일탈만 문제삼는다면 군 위안소라는 제도 자체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일 것”(481)이라고 쓰는 정영환의 악의적인 독해는 그의 사고회로와 논증방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129쪽)


나는 위안부를 만든 것은 근대 국민국가의 남성주의, 가부장주의, 제국주의의 여성/민족/계급/매춘차별의식이므로 일본은 그런 근대국가의 시스템 문제였음을 인식하고 위안부에 대해 사죄/보상을 하는 것이 옳다고 썼다. 그런데도 정영환은 ‘박유하는 한일합방을 긍정하고 1965년체제를 수호하고 있으며 위안부 할머니의 개인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거짓주장을 편다. (…) 나는 정영환의 왜곡을 범죄 수준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정영환의 비판 “방법”은 서경식이나 김부자 등 다른 재일교포들의 나에 대한 비판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116~117쪽) 

 

실제로, 군인이 끌고 갔다는 식의 강제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받아들여지면서 논의가 ‘인신매매’로 옮겨갔고, 요시미 선생조차 ‘구조적 강제성’을 말한다. 그런데 ‘구조적 강제성’이라는 개념은 바로 내가 『화해를 위해서』(2005)에서 사용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정영환을 비롯한 비판자들은 나의 책을 없는 것으로 치부하거나 불만인 부분만 강조하는 것을 넘어 곡해와 왜곡마저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최근에는 이 문제를 식민지지배 문제로 봐야 한다는 나의 제기까지 인용 없이 사용하면서도 『제국의 위안부』의 부제가 바로 ‘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이라는 점은 결코 말하지 않는다.(124쪽)


정영환은 내가 위안부 문제의 “그 책임을 일본 국가에 물을 수 없다”(480)고 한 것으로 정리한다. 하지만 나는 “법적 책임을 물으려면 먼저 업자에게 물어야 한다”고 말했을 뿐, 일본 국가의 책임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영환은 나의 논지를 왜곡했고, 그런 그의 왜곡은 아무런 검증 없이 SNS와 언론을 통해 한국사회에 확산되었다. 내가 ‘업자’ 등 중간자들의 존재에 주목한 이유는 일본 국가의 책임을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이야말로 가혹한 폭력과 강제노동의 주체이고 그로 인한 이득을 취했기 때문이다. 또한 유괴나 사기 등은 당시에도 처벌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위안부의 ‘미움’이 이들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판자들과 나의 차이는 위안부의 미움의 다양성을 보려고 했는지 여부에 있다. 정영환 등 비판자들이 그런 지적을 불편해하는 이유는 그들이 의식했건 아니건, 한국/남성들에 대한 비판에 있다.(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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