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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소개

구조와 역사의 변증법으로 쿡 선장 살해의 미스터리를 푼다! <역사의 섬들>

                         뿌리와이파리의 백스물여덟 번째 책, 『역사의 섬들』이 나왔습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구조와 역사의 변증법으로 쿡 선장 살해의 미스터리를 푼다!

―『석기시대 경제학』의 저자 마셜 살린스의 역작!

 

“쿡 선장은 두 개의 상이한 체계의 희생자가 되었다. 그는 평화와 농경을 수호하는 하와이 신 로노로서 대지의 생산성과 하와이인의 안녕을 위해 죽는다. 동시에 그는 애덤 스미스의 이상을 세계 차원에서 실현하는 대리인으로서, 팍스 브리타니카의 순교자가 된다.”

 

마셜 살린스 지음, 최대희 옮김

양장(147*215mm)|296쪽|값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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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쿡 선장은 왜 하와이의 신이 되고, 왜 살해당했는가?

‘구조와 역사의 관계’를 규명한 역사인류학의 고전

 

1779년 1월 17일, 제3차 항해 중에 하와이 섬 연해를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 ‘신의 길’ 케알라케코아 만에 레졸루션호와 디스커버리호의 닻을 내린 제임스 쿡 선장은 평화와 농경의 신 로노로서 무려 1만 명의 하와이인들에게 열광적인 환대를 받았다. 그리고 2월 14일 일요일 아침, 숭배받는 존재에서 적의의 대상으로 바뀐 이 위대한 항해가는 자신이 영국 버밍햄에서 만들어 가져온 선물이자 교역품인 철제 단검을 쥔 누군가에게 살해당한다.

 

“하와이인들에게 쿡은 인간을 위해 대지가 열매 맺도록 하는 신이다. 평화와 농경의 기술을 수호하는 생산의 신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럽 쪽에서 볼 때도, 그는 ‘애덤 스미스의 이상을 세계 차원에서 실현하는 대리인’으로서, 마찬가지로 시장의 평화적인 ‘침투’의, 즉 무지몽매한 사람들에게 문명을 전해주고 전 세계에 부를 가져올 전도양양한 상업적 팽창의 영혼의 화신이다. 쿡은 그 길을 개척하여 경로와 자원과 시장을 결정할 터였다. 따라서 팍스 브리타니카의 선구자였던 쿡은 동시에 부르주아 로노이기도 했던 것이다.”(216쪽)

그런데 쿡 선장은 왜 처음에는 숭배받는 신이 되고, 왜 몇 주 지나지 않아 거꾸로 신에게 바쳐지는 제물로 탈바꿈했을까? 8~10명에 이르는 ‘용의자’ 가운데 그를 찌른 사람은 누구일까? 지은이 마셜 살린스는 “기초적인 범주들로부터 연역하는 셜록 홈스의 방식에 따라” 살해자를 찾아내고, 하와이, 나아가 피지 및 마오리족의 신화와 ‘백인 접촉시대’의 역사에 대한 분석을 통해 ‘구조와 사건(역사)의 관계’라는 핵심적인 주제에 대한 논의를 펼친다.

 

지은이는 “가난은 재화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나타난다”고 주장하며 수렵채집사회를 ‘최초의 풍요로운 사회’로 그린 『석기시대 경제학』(1972, 뿌리와이파리 근간)으로 널리 알려진 인류학계의 거장이다. 1985년 저작인 이 책 『역사의 섬들』의 서장에서 그는, 자신의 과제가 역사학과 인류학의 고전적 경계를 허물고 “문화에 대한 인류학적 경험으로써 역사 개념을 깨뜨리는” 데에 있다고 밝힌다. 역사적 사건이란 무엇인가? 역사와 구조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상징적 행위는 의미의 문화적 도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다섯 개의 강연, 그리고 책 전체의 문제의식과 논지를 정리한 서장은 이와 같은 질문들을 중심축으로 회전한다.

 

기능주의, 구조주의의 이분법은 틀렸다!

“역사는 문화에 의해 질서가 형성된다. 다양한 사회에서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사물의 의미의 도식에 따라. 물론 역도 성립한다. 문화의 도식은 역사적 질서에 의해 형성된다. 왜냐하면 의미는, 많건 적건 실천적 행동을 통해 재평가되기 때문이다. 이 모순의 합명제는 관련된 인간, 즉 역사 주체의 창조적 행동 속에서 펼쳐진다. (…) 이것이 이 책의 대략의 논지이다. 그것은, 인류학자들이 흔히 ‘구조’라고 부르는 것, 즉 문화질서의 상징 관계는 결국 역사적으로 조건지어진 어떤 것이라는 주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서장, 7~8쪽)

 

살린스는 래드클리프-브라운으로 대표되는 기능주의의 전성기 이후에, 그리고 소쉬르의 영향을 받은 구조주의에서 더욱 확고해진 “대부분의 인문학 분야에서 발견되는, ‘구조’와 ‘역사’를 이항대립으로서 포착하는 개념을 명백히 거부한다”. 과거와 현재,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 시스템과 사건, 하부구조와 상부구조, 개인과 집단, ‘현실적인 것’과 ‘이데올로기적인 것’, 남성과 여성, 하늘과 땅 같은 근원적인 이항대립(이분법)이 “현상학적으로 잘못된 길로 이끌 뿐만 아니라 분석의 도구로서도 쇠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적인 문화 범주가 양의적이거나 ‘상호모순적’이거나 ‘논리적으로 불안정’하다는 결론이 흔히 도출된다. 이러한 결론은 한걸음 더 나아가, 범주를 다양한 맥락에 적용해본다면 범주의 애매함을 없앨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구조를 그렇게 파악하는 것, 즉 차례차례로 맥락에 맞추어 제시된 명제들의 세트로서 파악하는 것은 논리를 끝까지 끌고 나가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특수한 것으로 발전시키지도 못한다. 맥락에 묶인 이 모든 정식은 단지 문화의 도식의 우연적 표상, 즉 (관찰자이건 참여자이건) 관심영역의 시점에서 본 일시적인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를 관통하는 논리는 범주들의 생성적 발전 안에 존재하며, 바로 이러한 발전에 의해서만 구조의 모든 정태적이고 부분적인 표현형태들이 동기화되는 것이다. 오로지 구조의 내적인 통시성에 의해서만 논리적 형식의 ‘양의성’을 합명제로 파악하거나, 맥락에 따른 가치규정을 맥락에 대한 규정적 가치평가로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기본형태들의 문화적 생명인 것이다.(176쪽)

 

오베예세케레 대 살린스 논쟁, 그리고 ‘역사의 섬들’

한편, 쿡 선장의 죽음을 이처럼 “하와이인의 문화 도식에 근거해 해석하는 살린스는 탈식민주의 쪽의 비판에 직면했다. 행위자의 관점을 재현하려는 서구의 시도가 오히려 비서구문화의 실체화에 기여하고, 연구자와 연구대상 사이의 불균등 권력관계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살린스는 구조와 역사를 연계하여 고찰함으로써 한편으로는 비서구적 역사성을 인정하고 비유럽중심주의적 역사이론을 대변하지만, 그럼으로써 다른 한편으로 그의 문화 개념은 특수한 서구적 오리엔탈리즘의 실천, 원주민의 침묵 및 다른 문화들의 실체화에 대한 책임을 떠안게 된다.”(옮긴이)

스리랑카 출신의 인류학자 가나나트 오베예세케레가 쿡 선장은 신이 아니라 수장(추장)으로서, 잠재적인 동맹세력으로서 환대받았을 뿐이라고 살린스의 연구를 비판하며 『쿡 선장의 신격화―태평양에서 유럽인의 신화 만들기』(1992)를 내고, 살린스가 『원주민은 어떻게 생각하는가―예를 들어 쿡 선장에 관하여』(1995)로 다시 반박하며 벌인 논쟁은 인류학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와 토론으로 확산되었다. “타자에 관해 안다는 것은 무엇으로 적절하게 구성되어 있는가? 그게 가능한가? 그게 좋은가?”

 

여러모로 흥미진진하기 이를 데 없고 곱씹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지만, 어쨌든 이 책은 인류학, 나아가 인문학 일반의 주요한 주제를 다루는 만만치 않은 고전급의 학술서다. 그래서 지은이도 옮긴이도 권한다, ‘제4장 제임스 쿡 선장, 또는 죽어가는 신’부터 읽되, 필요할 때마다 ‘일종의 요약’이자 논지의 핵심을 간추린 서장으로 돌아가 흐름을 잡으라고. ‘섬들’에서는 늘 ‘역사’가 만들어지고, 우리 모두는 ‘선장’이자 ‘(원)주민’이고 동시에 지은이 살린스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섬들』(이 제목은 저자의 논증에 깔린 여러 겹의 의미와 유머감각을 보여주는 익살이다)은 (…) 폴리네시아와 관련된 주제를 다룬 다섯 개의 강연과 책 전체를 꿰뚫는 이론적 함의를 정리한 서장으로 엮여 있다. 박식하고, 재치가 넘치며, 삐딱하고, 논증이 불투명한 문체(…) 그 결과는, 전통적인 사고에 갇힌 역사가들을 자극하는 뛰어난 인류학자의 다시 쓰는 역사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역사와 구조의 관계에 대한 아주 흥미로운 논의다.” ―피터 개더콜,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

 

 

 

 

지은이 마셜 살린스Marshall Sahlins

1930년에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레슬리 화이트, 칼 폴라니, 줄리언 스튜어드의 지적인 영향 아래 미시간 대학에서 인류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 학위(「폴리네시아의 사회계층론」)를 받았다. 1957년부터 73년까지 미시간 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67~69년에는 파리에서 지내면서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와 68혁명을 접했다. 1973~97년에는 시카고 대학 교수를 지냈고, 지금은 같은 대학의 명예교수로 있다.

그는 신진화론에서 시작하여 경제현상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거쳐 역사의 구조주의적 해석에 이르기까지 현대 인류학의 주요한 흐름을 이끌어온 대학자로, 주요 저서에 『폴리네시아의 사회계층론』(1958), 『진화와 문화』(공저, 1960), 『모알라―피지의 문화와 자연』(1963), 『부족민』(1968), 『석기시대 경제학』(1972), 『문화와 실천이성』(1976), 『역사의 은유와 신화의 현실』(1981), 『아나훌루―하와이 왕국에서의 역사의 인류학』(공저, 1992), 『원주민들은 어떻게 사고하는가―예를 들어 쿡 선장에 관하여』(1995), 『푸코를 기다리며』(1999), 『실천 속의 문화』(2000), 『투키디데스에게 보내는 사과―문화로서의 역사, 역사로서의 문화』(2004),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서구의 환상』(2008), 『친족이란 무엇인가』(20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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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본문 맛보기

 

 

-역사는 문화에 의해 질서가 형성된다. 다양한 사회에서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사물의 의미의 도식에 따라. 물론 역도 성립한다. 문화의 도식은 역사적 질서에 의해 형성된다. 왜냐하면 의미는, 많건 적건 실천적 행동을 통해 재평가되기 때문이다. 이 모순의 합명제는 관련된 인간, 즉 역사 주체의 창조적 행동 속에서 펼쳐진다. (…) 이것이 이 책의 대략의 논지이다. 그것은, 인류학자들이 흔히 ‘구조’라고 부르는 것, 즉 문화질서의 상징 관계는 결국 역사적으로 조건지어진 어떤 것이라는 주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주장은 명백히, 대부분의 인문학 분야에서 발견되는, ‘구조’와 ‘역사’를 이항대립으로서 포착하는 개념을 거부한다.(7~8쪽)

 

-사건 그것이 해석되는 만큼 사건이 되는 것이다. 사건은 문화의 도식 내에서,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자기 자리를 잡을 때에야 비로소 역사적 의미를 획득한다. 한편으로 쿡을 다시 하와이로 돌아오게 한, 레졸루션호의 앞돛대가 부러지는 사고와, 다른 한편으로 이 모든 것에 대한 섬 주민들의 불길한 시선, 이를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하와이 문화의 어법이다. 사건이란 발생한 우연적 사건과 구조(혹은 구조들)를 묶는 관계―그것은 의미 있는 가치로서의 현상의 본질을 아우르는 것이고, 거기에서 특유의 역사적 효력이 발생한다―인 것이다(마지막 장의 일반적 논의에서 다시 이 지점으로 돌아올 것이다). 두 번째 시도는 아마도 첫 번째보다 독창적일 텐데, 나는 구조와 사건 사이에 제3의 용어, 즉 의 상황적 합명제로서 ‘국면의 구조’를 끼워넣고자 한다.(17쪽)

 

-어쩔 수 없이 요약할 수밖에 없지만, 나는 ‘구조’라는 인류학 개념이 만약 소쉬르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상징적 대립과 조응이라는 정적인 조합으로서 제시된다면 그렇게 유용한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전체적이고 가장 강력한 형태로 제시될 때의 구조는 과정적이다. 즉, 구조란 생성 및 재생성의 세계체제에 이르는 문화적 범주와 그 관계의 역동적 발전을 의미한다. 문화적 삶의 과정의 프로그램으로서 시스템은 내적인 (구조적인) 통시성을 가지고, 본성상 한시적이고 가변적이다. 구조는 문화적 삶의 기본형태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통시성이 구조적이고 반복적이기 때문에, 우연적 사건을 포괄하는 우주론적 기획으로서 역사적 시간과의 대화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138쪽)

 

-인도유럽어족 사람의 것이든 폴리네시아인의 것이든, 이 모든 계보, 신화, 의례에서 우리는 인간을 통해 나타나는 문화적 범주, 추상적이지만 근본적인 개념을 다룬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이 인간들에 의한 행위라는 것이 범주들 간의 올바른 관계, 범주들의 조합과 조직 과정을 표현한다. 인류학자들은 이를 ‘구조’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용어를 대비와 조응의 공시적 도식―예를 들어 수장과 부족민, 이방인과 토착민, 바다와 내륙, 아내를 취하는 자와 아내를 내주는 자 등등―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시간과 순서가 신화의 전개나 의례의 거행에서 핵심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구조 역시 범주와 그 범주들의 관계의 생성적 발전인 것이다. 결국에는 새로운 합명제적 용어가 만들어질 것이고, 기초적인 범주들의 가치가 변화할 것이다.(156쪽)

 

- 핵심적인 문화 범주가 양의적이거나 ‘상호모순적’이거나 ‘논리적으로 불안정’하다는 결론이 흔히 도출된다. 이러한 결론은 한걸음 더 나아가, 범주를 다양한 맥락에 적용해본다면 범주의 애매함을 없앨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구조를 그렇게 파악하는 것, 즉 차례차례로 맥락에 맞추어 제시된 명제들의 세트로서 파악하는 것은 논리를 끝까지 끌고 나가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특수한 것으로 발전시키지도 못한다. 맥락에 묶인 이 모든 정식은 단지 문화의 도식의 우연적 표상, 즉 (관찰자이건 참여자이건) 관심영역의 시점에서 본 일시적인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를 관통하는 논리는 범주들의 생성적 발전 안에 존재하며, 바로 이러한 발전에 의해서만 구조의 모든 정태적이고 부분적인 표현형태들이 동기화되는 것이다. 오로지 구조의 내적인 통시성에 의해서만 논리적 형식의 ‘양의성’을 합명제로 파악하거나, 맥락에 따른 가치규정을 맥락에 대한 규정적 가치평가로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기본형태들의 문화적 생명인 것이다.(176쪽)

 

-그렇다면 누가 쿡 선장을 죽였을까? 사건이 일어난 당일부터 50여 년 후에 이르기까지 나온 사료들을 종합해보면, ‘쿡 선장을 죽인 남자’―보통은 철제 단검으로 그를 처음 찌른 사람을 가리킨다―로 거명되는 사람은 8명에서 10명에 이른다. 이 습격자로 추정되는 이름은 파헤아, 누하, 피홀레, 포헤와 등이다. 이들을 지위, 가문, 그리고 다른 사회적 지표에 따라 구분해놓은 기록들은 아주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줄 것이다. 는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열쇠는 항상 기초적인 범주라는 점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그렇지, 친애하는 왓슨?) (182~3쪽)

 

-쿡의 죽음은 로노의 죽음이다. 이 사건은 절대적으로 유일무이한 사건이었고, 또한 해마다 반복되었다. 그것은 바로 이 사건이 (그리고 어떤 사건이든) 두 가지 차원에서, 개인적인 행위로서 그리고 집단적인 표상으로서, 좀 더 풀어 설명하자면 특정한 개인적 삶의 역사와 그것을 넘어선, 그보다 위에 있는 사회의 존재인 역사 사이의 관계로서, 동시에 전개되기 때문이다. 클리퍼드 기어츠의 말을 빌리면, 사건이라는 것은 보편적 현상의 둘도 없는 구현이다. 그러므로 한편에는 역사 우연성과 개별 행위의 특수성이, 다른 한편에는 우리가 거기서 어떤 문화적 질서를 인식하는 사건의 회귀적인 차원이 동시에 존재한다.(1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