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러미 A. 그린 지음 | 김명진 · 김준수 옮김 | 153x224mm
456쪽 | 2019년 9월 6일 1쇄 펴냄 | 25,000원
[상세 정보]
이 책은…
병이 약을 만든 게 아니라, 약이 병을 만들었다?
약은 질병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어떻게 바꿔놓았나
의학사와 과학사회학의 눈으로 보는
숫자가 지배하는 의료산업,
나아가 ‘숫자의 시대’가 된 현대사회에 대한
존스홉킨스 의대 교수 제러미 A. 그린의 진단!
오늘날 약과 질병, 위험과 진단, 의학과 시장의 복잡한 연계는 주류 의학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는 최근에 들어서야 비로소 자리잡은 구조다. 반세기 전 미국만 돌이켜 봐도, 질병의 위험성을 낮춰주는 약은 거의 없었고, 만성병은 대체로 피할 수 없는 인간의 퇴행 현상으로 여겨졌다. 어쩌다 우리는 정상과 병리 사이의 구분선이 수치적 추상이 된 상황에 이르렀을까? 이러한 증상 없는 질병들은 어떻게 등장했으며, 건강과 질병, 의사와 환자, 개인과 인구집단 사이의 어떤 새로운 관계를 나타내고 있는가? 약이 질병의 정의와 건강 증진의 철학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해지는 데 어떤 힘들이 작용했는가? 이 책은 세 가지 약과 질병에 대한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약을 통한 예방’이라는 현대의학 교의의 한계를 넘어서려면 종합적인 역사적 관점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수십 년간 매출이 폭증한 제약산업 … 왜 아프지 않은데 매일 약을 먹을까?
병원이나 보건소에서 혈압이나 당뇨, 콜레스테롤 등의 수치를 재며 막연한 불안감에 빠진 적이 있는가. 이런 건강 관련 수치들이 확립되고 보급된 게 불과 수십 년 안팎의 일일 것 같은데, 언제부터 이렇게 숫자를 모시며 살았는지 잠깐이나마 궁금해졌을 수 있다. 그 이전에도 건강할 사람들은 충분히 건강했을 텐데, 현대에 들어와 괜한 숫자놀음을 하고 있는 게 아닌지 말이다. 병원과 약국이 언제부터 이토록 많아지고, 의료 기기와 제약회사가 넘쳐나게 됐을까. 어쩌면 의료산업 관계자들의 배를 불려주기 위해 우리가 항상 ‘건강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믿음을 섬기며 사는 것은 아닐까.
이 책에서 저자 제러미 A. 그린은 그런 의심에 대해 약과 질병의 관계를 중심으로 검토한다. “병 주고 약 준다”라는 속담이 있듯, 흔히들 병이 있어야 약을 줄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현대의학에서 약이 먼저 생기고 나서 그에 걸맞게 병이 만들어지기도 했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약 다이우릴은 본래 이뇨제로 쓰려던 약인데, 혈압을 낮추는 데 쓸모가 있음을 발견하고 고혈압 약으로 변모한다. 고혈압을 다스리는 것은 신장의 문제라고 여겼지만, 이 약 덕분에 심장과 교감신경을 관리하는 문제로 치료 방향도 바꾸게 된다. 이처럼 과거에는 질병으로 취급하지 않던 만성병(고혈압·당뇨·고콜레스테롤)은 약이 개발된 이후 고쳐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만성병의 발명은 결국 제약회사를 비롯한 의료산업의 시장 확장에 도움을 주는 결과만 낳은 것은 아닐까? 저자는 그런 관점도 일부 의미 있음을 인정한다. 실제로 약의 효능을 알아보기 위한 임상시험은 갈수록 대대적인 이벤트처럼 바뀌어갔고, 임상시험의 규모를 말하는 게 여간한 광고 카피보다 잠재적 환자(고객)들의 눈길을 붙잡을 수 있었음을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제약업체들과 의학계 사이의 카르텔을 의심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현대의학의 성과를 설명할 수는 없다. 최근 수십 년간 인간의 평균 수명은 꾸준히 늘어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겉으로 드러난 증상을 치료하던 방식에서 ‘예방’하고 ‘관리’하는 쪽으로 바뀐 의학사의 패러다임 전환을 다양한 맥락에서 살펴본다.
혈압계가 말해주지 않는 것들 … 왜 하필 고혈압 기준은 140/90mmHg이 됐나?
이 책은 세 가지 ‘기적의 약’(고혈압의 ‘다이우릴’, 당뇨의 ‘오리네이스’, 고콜레스테롤의 ‘메바코’)에 얽힌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약을 통한 예방’이라는 현대의학의 교의에 밑바탕이 된 마케팅과 의학의 융합을 탐구한다. 이 세 가지 이야기는 그 특성과 관계자가 서로 엮여 있으며, 지난 반세기 동안 치료 지식과 실천에서 일어난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와 일련의 구조적 발전을 설명한다. 전체 인구의 상당수가 자신이 만성질환임을 알게 되고 약의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기, 이 변화의 과정에서 숫자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
만성병은 겉보기에 멀쩡해 보이기 때문에 정상과 병리 상태를 나누는 뚜렷한 기준이 필요했다. 숫자는 그 애매함을 불식해주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물론 고혈압의 문턱값이 처음부터 고정된 것은 아니었다. 고혈압을 예로 들자면, 1950년대 후반 미국에서 수축기 혈압 140mmHg과 확장기 혈압 90mmHg으로 자리잡기까지 숱한 논쟁이 있었다. 어느 의학자는 180에 110을 제시하기도 했다. 고혈압의 문턱값이 한번 정해진 뒤에도 미국 보건당국에서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내놓으며 시대에 따라 문턱값을 변경했다.
숫자가 나오면 언뜻 견고한 근거가 있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어떤 문턱값을 정하기까지 의학적으로 수치를 뒷받침할 명확한 근거로 입증한 게 아니라, 의학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수많은 갈등과 합의의 과정을 반복했다. 이런 관점은 저자가 질병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대목에서도 이어진다. 질병은 어떤 의학 전문가가 단독으로 정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질병에는 환자, 의사, 가족, 소비자단체, 보험회사, 진단 기술, 전문가 위원회, 규제기구, 병리적 증상 그 자체의 물질적 기반이 포함돼 있으며, 이 모든 것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신체의 시스템 속에서 서로 맞물리는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뭐든 다 숫자로 말하는 현대사회의 속살 … ‘숫자의 시대’는 어떻게 왔는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병을 더욱 철저히 예방하고 관리하기 위해 더욱 강력한 약의 출현을 기다린다. 저자는 ‘폴리필’처럼 완벽하게 심혈관 질환을 제어하는 만능 약이 개발되고 있다고 얘기한다. 폴리필 같은 단일한 알약을 매일 먹으면 인간은 평균 수명을 11세 더 끌어올릴 수 있다. 과연 올더스 헉슬리가 말한 ‘멋진 신세계’는 오고 있는가.
우리는 스마트폰 어플을 통해 수면 시간, 섭취한 칼로리 양, 하루 걸음 수, 하루에 물을 몇 잔이나 마시는지 같은 여러 수치화된 데이터를 제공받는다. 버스 예상 도착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어떤 정책에 대한 찬반 여론은 어느 정도인지 등 온갖 불명확한 것들도 숫자로 표현된다. 이 책은 점점 더 많은 것들이 숫자로 측정되고 예측되는 현대사회의 단면을 의료계의 모습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1950년대 후반 미국에서 시작된 이러한 흐름은 우리의 ‘오래된 미래’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다이우릴과 오리네이스, 메바코의 유산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추천사
“‘질병’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에 대한 통찰력 있고 흥미진진한 탐구. 현재와 미래의 보건의료를 이해하는 데 중대한 함의를 던진다.” _제리 에이본, 하버드 의대 교수
“이 책에서 주목할 점은 우아하고도 확신 있는 글쓰기만이 아니라, 의학 실천과 제약 마케팅에 대한 내부자의 관점을 훨씬 더 광범위한 사회적 흐름과 결합한 방식이다. 이는 매우 인상적인 학문적 업적이다.” _칼 엘리엇, 미네소타대학 생명윤리센터 교수
“약을 통해 위험을 줄이는 우리의 멋진 신세계에 대한 제러미 그린의 역사적 해석은 문제적이며 반향을 요구한다. 책의 학문적 깊이와 균형 잡힌 논조는 단순히 나쁜 행위자와 비윤리적 행위를 뿌리 뽑기보다는 현재의 의료 및 보건의 중요한 가치와 구조적 권력의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해야 함을 제언한다.” _로버트 애로노위츠, 펜실베니아대학 역사·사회·과학부 교수
“과학과 건강 관리 마케팅이 서로 침투하는 관계임을 실증하고 질병이 정의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_니나 C. 아유브,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
“‘숫자로 처방되는’ 시대가 끝날 때까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훌륭한 책.” _그레고리 J. 힉비, 『약학사』
“20세기 후반 미국의 의료 실무와 제약산업의 발전을 다룬 최신 저서 중 가장 중요한 책.” _주디 슬린, 『의료사회사』
“미묘하면서도 명쾌한 연구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 _신시아 A. 코널리, 『간호사학평론』
저자·역자 소개
지은이 제러미 A. 그린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의 윌리엄 H. 웰치 의학 및 의학사 교수로 동 대학의 의학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 동볼티모어의료센터에서 내과의로도 일하고 있다. 20세기 임상의학, 약, 의료기술, 의료인류학, 전 지구적 보건, 질병의 역사 등 폭넓은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지은 책으로 『Generic: The Unbranding of Modern Medicine』(2014), 엮은 책으로 『Therapeutic Revolutions: Pharmaceuticals and Social Change in the 20th Century』(2016) 등이 있다.
옮긴이 김명진
서울대학교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미국 기술사를 공부했고, 현재는 동국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하면서 번역과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원래 전공인 과학기술사 외에 과학 논쟁, 대중의 과학 이해, 과학자들의 사회운동 등에 관심이 많으며, 최근에는 냉전 시기와 ′68 이후의 과학기술에 관해 공부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야누스의 과학』(2008), 『할리우드 사이언스』(2013), 『20세기 기술의 문화사』(2018)가 있고, 옮긴 책으로 『닥터 골렘』(2009), 『급진과학으로 본 유전자, 세포, 뇌』(2015), 『냉전의 과학』(2017) 등이 있다.
옮긴이 김준수
서울대학교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과학기술사를 전공했다. 현대사회를 지탱하는 물질적·비물질적 토대, 인간과 기술, 자연의 관계에 관심이 있다.
옮긴 책으로 『지구온난화를 둘러싼 대논쟁』(2012)이 있다.
차례
한국어판 서문
서문
감사의 글
서론 | 위험을 감소시키는 약전
제1부 | 다이우릴과 고혈압, 1957~1977
제1장 범람의 시작 ─ 다이우릴의 개발과 홍보
제2장 증상의 축소, 질병의 확대 ─ 다이우릴 이후의 고혈압
제2부 | 오리네이스와 당뇨병, 1960~1980
제3장 숨은 당뇨병 환자를 찾아서 ─ 오리네이스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다
제4장 위험과 증상 ─ 오리네이스의 시련
제3부 | 메바코와 콜레스테롤, 1970~2000
제5장 어느 위험 요인의 추락과 부상 ─ 콜레스테롤과 치료법
제6장 네 수치를 알라 ─ 콜레스테롤과 병리의 문턱
결론 | 치료법의 변천
옮긴이의 말
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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