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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소개

<트로이 전쟁> 본문 맛보기

 

트로이 전쟁에 대해 우리가 몰랐던 것들! 호메로스의 서사시나 고대사에 관심이 있다면 더욱 즐겁게 읽으실 수 있답니다.^^

 

우리가 트로이 전쟁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던 것은 대부분 틀렸다. 예전의 견해에서 전쟁은 트로이 평원에서 양 진영 전사들 간의 결투로 결정되었다. 포위된 도시는 그리스인들을 물리칠 가망이 없었고 트로이 목마는 신화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트로이 전쟁이 대체로 저강도 무력 충돌과 민간인에 대한 공격이었다는 것을 안다. 제2차 세계대전보다 테러와의 전쟁과 가까웠던 셈이다. 트로이 성은 포위되지 않았고 그리스군은 트로이에 상대가 되지 않아서 오직 계략을 써서만 트로이를 함락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 계략이 트로이 목마였을지도 모른다.

- 30~31쪽

 

트로이 전쟁과 『일리아스』의 관계는 제2차 세계대전과 <지상 최대의 작전the Longest Day>[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다룬 1962년 미국 영화]의 관계와 같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 개시일 하루가 제2차 세계대전을 제대로 요약할 수 없듯이 『일리아스』도 트로이 전쟁을 제대로 요약할 수 없다.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 전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전형적이기는커녕, 『일리아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트로이 전쟁에서 이례적인 것이었다.

- 31쪽

 

일부 회의주의자들은 트로이 전쟁의 사실성을 부인하는데 약탈당한 다른 고대 도시들과 비교해볼 때 트로이 유적지에서 무기가 거의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트로이가 결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역이 아니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곳은 고대 세계에서 첫째가는 여행지였다. 그곳의 땅은 알렉산더 대왕이나 아우구스투스 황제 같은 VIP 관광객들을 위해 유물을 찾느라 파헤쳐졌다. 그리고 이후의 ‘도시 재개발’은 그리스와 로마의 사원이 들어설 부지를 고르기 위해 성채들을 밀어버렸고, 그 과정에서 청동기 시대 유적층이 파괴되었다. 고고학적 증거들은 약탈당하고 불에 탄 후, 수 세기 동안 열성적인 관광객들에 의해 샅샅이 파헤쳐진 도시라는 그림과 일치한다.

- 38-39쪽

 

트로이는 탐욕스러운 그리스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파리스가 트로이가 아니라 별 볼 일 없는 곳에서 굴러들어온 사람이었다면 아가멤논은 신을 대신해 복수하고 메넬라오스의 명예를 지키는 임무에 동참할 사람을 별로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가멤논은 금맥을 공격하자고 해서 그리스인들을 규합했다.

- 63쪽

 

트로이 포위 공격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사실 포위는 없었다. 그리스인들은 결코 도시를 에워싸지 않았다. 그들은 말뚝을 박거나 호를 파서 외부 세계에서 육로로 트로이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스군은 트로이군의 급습에 압도당할 위험 없이 도시를 완전히 포위할 만한 수적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트로이의 수비군은 오디세우스가 다른 맥락에서 말한 것처럼 “제철 맞아 피어나는 나뭇잎이나 꽃잎들처럼 많았다.”

- 130쪽

 

아니, 멧돼지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사람이다. 빛나는 준족 아킬레우스, 전쟁의 신 아레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의 몸은 청동 갑옷으로 덮여 있고 손에는 방패와, 끝에 날카로운 청동 날이 달린 거대한 물푸레나무 창을 들었다. 물푸레나무 창만큼이나 그 역시 거대하다. 그리고 도저히 믿기지 않는 빠른 속도로 이 젊은이들에게 돌진해오고 있다. 그가 그리스어로 뭐라고 외친다-낯선 말이지만, 말투만으로도 머리칼이 곤두서기에 충분하다. 그러더니 가장 가까이 있는 목동의 목덜미를 겨눠 창을 던진다. 그다음 이내 칼을 빼어 들고 마구 베기 시작한다. 목동들이 몸을 숨기거나 몸값을 낼 테니 살려달라고 빌거나 아니면 맞서 싸우기도 전에 모든 것이 끝난다. 무장하지 않은 왕자 일곱 명, 아니 시체 일곱 구와 피살자들의 피와 땀으로 뒤범벅된 채 거친 숨을 몰아쉬는 거인 한 명이 있을 뿐이다. 이제 그는 잘 키운 소 떼와 양 떼로 더 부유해졌다.

- 142쪽

 

호메로스는 그 유명한 발뒤꿈치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테티스가 갓난 아들을 스틱스 강에 담가 불사신으로 만들었지만 테티스가 쥐고 있던 발뒤꿈치만은 유일한 약점으로 남았다는 이야기가 『일리아스』에는 없다. 이 같은 뒷이야기들은 아마도 나중에 덧붙여졌을 것이다. 호메로스의 아킬레우스는 신들로부터 여러 가지 도움을 받지만 결코 불사의 존재는 아니다.

- 143쪽

 

일 대 일 대결은 청동기 시대에 드문 경우가 아니었겠지만, 분명히 호메로스에 묘사된 것만큼 자주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청동기 시대 전쟁 서사시는 영웅적 개인주의를 과장하고 집단적 노력의 성과를 별로 다루지 않는다. 영웅들 간의 대결을 강조하는 호메로스의 태도는 청동기 시대의 실제 전투 방식보다 청동기 시대의 문학 양식을 더 잘 반영하는 듯하다.

- 195쪽

 

트로이군은 이쪽저쪽을 치고 빠지면서 그리스군을 괴롭히는 이른바 “벼룩의 전쟁”을 치렀어야 했다. 그들이 전략적 방어에 치중한 것은 옳았지만 기회에 따라 전술적 공세를 취하지 않은 것은 패착이었다. 트로이군은 현지의 지형지세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자신들의 강점을 최대한 살려 그리스군의 약점, 다시 말해 적대적이고 낯선 환경에 놓인 그들의 불안정성을 공략해야 했다. 무장이 간단하고 민첩한 소규모 병력을 이용해 보급품을 찾으러 나온 부대와 그리스군 진지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 214쪽

 

이 격전의 둘째 날과 셋째 날에 일어난 사건들이 온전히 『일리아스』의 절반을 차지한다. 그 이틀이 서사시의 두 주인공의 삶의 절정을 의미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트로이의 운명과 관련하여 이 이틀은 사실상 지엽적 부분에 불과하며 따라서 군사적 사안은 개인적 드라마보다 간단히 언급되고 지나간다. 올림포스의 신들은 이 이틀간의 사건에서 특히 두드러진 역할을 한다. 우리로서는 그 부분을 서사시 전통으로 간단히 치부하면 그만이겠지만, 사실 청동기 시대 전장의 심리가 반영된 부분이기도 하다. 고대의 병사들은 싸움이 치열해질수록 더 종교적으로 변했다.

- 222~223쪽

 

아킬레우스의 마지막 희생자는 헥토르였다. (중략) 아킬레우스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당황한 그는 결사적으로 달리지만 더 빠른 발이 뒤쫓고 있었다. 두 사람은 트로이 시 주변을 세 바퀴 돈다. 사실, 호메로스는 두 사람이 트로이 평원을 세 바퀴 돌아 58킬로미터 이상의 거리를 달렸다고 묘사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마침내 용기를 되찾은 헥토르는 맞서서 싸우기로 한다. 아킬레우스는 투창을 던졌다 맞히지 못하지만, 신의 개입으로(아니면 잽싸게 앞으로 달려가) 창을 되찾는다. 헥토르의 투창은 아킬레우스의 방패를 때린다. 그러자 헥토르는 칼을 빼어 들고 아킬레우스에게 달려들지만 이미 대비하고 있던 아킬레우스는 긴 창으로 헥토르의 목을 꿰뚫는다.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에게 다가올 운명을 예고하고 땅에 쓰러져 죽는다.

- 239쪽

 

목마는 소수의 그리스 병사들을 도시 안으로 몰래 들여보내는 용도로 이용될 수도 있었을 테지만 들킬 염려가 매우 컸다. 트로이 목마에 대한 전통적 이야기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만약 목마가 존재했다면 비어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그럴듯하다. 도시 안으로 병사들을 잠입시키는 데는 더 간단하고 안전한 방법들이 많았다. 그리스인들에게 목마의 주 용도는 운송 수단이 아니라 유인책, 1944년 연합군이 노르망디 대신 파 드 칼레에 상륙하는 것처럼 독일군을 속이기 위해 동원한 패튼 장군의 허깨비 군대의, 다소 기술이 떨어지는 원조인 셈이다.

- 266쪽

 

과장할 때도 솔직할 때도 호메로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청동기 시대의 진실에 더 가까이 있었다. 청동기 시대의 시인들은 툭하면 싸움터의 무용을 부풀리지만 청동기 시대의 다른 기록들은 진실을 담고 있다. 때로는 저강도 충돌이었으며 종종 교활한 책략이 동원되었고 언제나 추악하기 짝이 없던 전쟁의 진실을. 비록 트로이는 호메로스가 태어나기 수 세기 전에 무너졌지만 구전과 더불어 어쩌면 그리스어가 아닌 다른 기록들 덕분에 호메로스는 이 같은 진실을 담아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