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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소개

<무기를 내려놓으라!>의 본문 맛보기

뿌리와이파리에서 펴낸 첫 소설로, 반전의 메세지가 명확히 표현되는 글입니다.

 

 

그 위협적인 전쟁에 대해 내가 들은 이야기들은 모조리, 적이 어디서 어떻게 공격해올 것 인지, 그러면 ‘우리에게’ 유리한 점은 무엇인지 등 이런저런 가능성을 저울질하는 식으로 지극히 전략적인 관점에서만 다루어졌다. 인간적 관점-요컨대 승리가 아니면 패배라는 것, 그리고 모든 전투는 수많은 피와 눈물의 희생을 요구한다는 것-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 25~26쪽

 

“얘야, 개인보다는 제국의 생명이, 국가의 생명이 더 길고 중요하다. 개인들은 한 세대 또 한 세대 사라져가지만, 제국은 계속 발전해가면서 더욱 큰 명성과 위대함과 위력을 갖게 되지. 또 다른 제국에 정복된다면 몰락하고 쪼그라들다가 사라져버리는 것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개인들이 추구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고귀한 것, 그것을 위해서는 언제라도 기꺼이 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제국의 존속과 위력과 번영이다.”

- 60~61쪽

 

“모든 전쟁은 그 결과가 어떠하건, 불가피하게 그에 따르는 또 다른 전쟁의 씨앗을 속에 품고 있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죠. 한 가지 폭력행위는 항상 어떤 권리를 침해하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면 침해당한 권리는 조만간 자신을 주장하게 되고 새로운 갈등이 생겨나는데, 이 갈등은 또다시 부당함을 씨앗처럼 속에 품고 있는 폭력에 의해 해결되니, 그렇게 끝없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 244쪽

 

“나는 시체들을 쌓아 만든 흉장도 본 적이 있소. 근처에 쓰러져 있던 전사자들을 쌓아올려 몸을 감추고 그 시체더미 너머로 공격자들에게 사격을 하려는 것이었소. 내가 살아 있는 한 그 흉장을 잊지 못할 것 같소. 거기서 시체벽돌 역할을 하던 이들 중에는 아직 살아서 팔을 움직이는 이도 있었다오.”

- 326쪽

 

전투 중의 전쟁터보다 더 섬뜩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전투가 끝난 뒤의 전쟁터였다. 이제 천둥 같은 포격소리도, 귀를 찢을 듯한 팡파르도, 들끓는 북소리도 없고, 낮게 들리는 고통스러운 신음소리와 죽어가는 이들의 거친 기침소리뿐이다. 짓밟힌 땅에서 여기저기 피가 고인 웅덩이들이 붉은 빛을 발한다. 농작물은 모두 짓밟혔고, 지푸라기에 뒤덮인 채 멀쩡하게 남아 있는 밭뙈기들이 간간이 보인다. 평소에는 웃음이 넘치던 마을들이 폐허와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숲의 나무들도 숯이 되어 툭툭 부러진다. 산울타리는 산탄에 다 파괴되었다. 그리고 이 전장에는 수천 명의 죽은 자와 죽어가는 자, 어찌 해볼 수 없이 죽어가는 자들이 쓰러져 있다!

- 349~350쪽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놀라운 것은, 인간들이 서로를 그러한 상태로 내몬다는 점, 그러한 상황을 목격한 후에도 무릎을 꿇고서 전쟁에 대한 전쟁을 벌이겠다고 진심으로 맹세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군주들이라면 검을 내던지고, 아무 권력도 없는 사람들이라면 앞으로 모 든 활동과 말과 글, 생각과 배움과 행동에서 ‘무기를 내려놓게’ 한다는 한 가지 목표에 헌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 377~378쪽

 

“아버지, 제게 사랑을 베푸는 셈치고 제발 전쟁을 저주하시라고요! 저기를 보세요.” 나는 아버지를 창가로 끌고 갔다. 마침 검은 관을 실은 수레가 뜰로 들어오고 있었다. “저걸 보시라고요. 저게 우리 릴리가 누울 관이에요. 내일이면 우리 로자를 위한 똑같은 관이 도착하겠죠. 그리고 모레도 아마 또 다른 관이 올 테고요. 왜요? 무엇 때문에요?”

- 433~434쪽

 

“생각해보세요. 영웅적인 용맹함을 가장 내세우는 사람들, 전쟁에서의 업적과 위험을 가장 열렬하게 찬양하는 사람들이 누굴까요? 바로 전쟁에서 가장 안전한 사람들입니다. 교수들, 정치가들, 술집에서 정치 얘기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 그야말로 노인들의 합창이지요. 『파우스트』에서처럼. 자기 일신의 안전함이 무너지면 그 합창도 뚝 그칠 겁니다.”

- 480쪽

 

그 살인자가 개인이 아니라고 해서, 또한 인간이 아닌 것, 즉 전쟁이라고 해서 그것이 살인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 책임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자부심 가득한 격정을 실어 “역사 앞에서 이 전쟁의 책임은 내가 진다”고 큰소리치며 전쟁선동 연설을 한 의회의 허풍선이들에게? 그렇다면 한 사람의 어깨가 그런 전쟁의 짐을 견뎌낼 만큼 충분히 강할까? 결단코 그렇지 않다. 게다가 그런 허풍선이의 말을 뒤늦게 따지고 들겠다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 558~559쪽

 

“현재 도달해 있고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 무기기술과 병력규모의 가공할 위력을 생각해보면 다음번 전쟁은 결코 ‘위급한’ 상황에 그치지 않을 겁니다. 표현할 적당한 단어가 없는데, 아무튼 어마어마한 비참함 을 야기할 상황일 것입니다. 구조도 간호도 불가능하고 위생대책도 보급대책도 실제 필요에 비하면 어이없는 농담 수준일 겁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쉽고 무덤덤하게 입에 올리는 다음번 전쟁은 한쪽의 승리와 다른 한쪽의 패배가 아니라 만인의 몰락을 의미할 것입니다.”

- 5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