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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소개

<과학혁명> 본문 맛보기

인간의 사유 대전환을 일으킨 근대 시기를 다룬 책 <과학혁명>의 본문은 어떨까요? 살짝 보여드립니다.

 

천상의 움직임은 규칙적이며, 지상계를 벗어난 영역에서 진정으로 새로운 현상은 관측된 바가 없었다. 혜성과 같이 하늘에서 잠시 발생했다가 사라지는 현상들은 지상계의 현상으로 정의되어버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파악한 바로는, 혜성은 지구 주위를 회전하는 달 천구보다 아래쪽에 위치한 상층부 공기 영역에서 일어나는 기상 현상이었다. 천상계와 지상계는 전혀 다른 영역이었고, 그러므로 다른 종류의 물리적 구성물과 상이한 운동에 지배받는 별개의 세상이었다. 천상계와 지상계에 대한 자연학은 분명히 자연철학의 일부임이 틀림없었지만, 그 둘은 전혀 다른 영역을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대학의 교양학부 교과목에서 교육하던 세상의 모습이었다. (31쪽)

 

그[베이컨]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자연철학과 그 이외의 여러 대안에 대해, 잘못 구상된 것들이라고 공격했다. 그는 자연철학을 관조적인 작업으로 바라보는 생각을 완전히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대신, 그는 제대로 이해된 자연철학이란 오늘날의 우리가 기술적 진보라고 생각하는 바에 해당하는 인류 복지의 증진을 달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단순히 스콜라주의적 자연철학을 어설프게 땜질이나 하고 다니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모든 작업은 완벽히 새로워질 필요가 있었다. (113쪽)

 

기하학은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들이 왜 그렇게 되어 있는가에 대한 설명들을 제공할 수 있었다. 다섯 개의 정다면체에 대한 기하학은 행성의 개수와 태양까지의 거리를 서술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실들이 타당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케플러는 정다면체로 보여준 바와 같은 종류의 수학적 명료함이 왜 특정 사물들이 그러했는지를 설명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우주가 기본적으로는 수학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다. (……) 사실 많은 면에서 천문학자로서의 케플러의 경력은 신의 의도를 이해하고 천문학 연구라는 매개물을 통해 신에 가까이 다가서려는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이것은 가장 순수하고 가장 신을 중심으로 하는 형태의 자연철학이었다. (145~7쪽)

 

이 과정에서 갈릴레오는 자신이 “몇 달 공부한 순수수학보다는 철학을 훨씬 더 오래, 여러 해에 걸쳐 공부했다”는 것을 잊지 않고 강조했다. 그가 자신의 철학적 소양을 강조하는 것을 중요시했다는 점은, 대학의 철학적 동료들이 지녔던 높은 지위에 분개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갈릴레오 또한 자신의 열등한 지위를 정당화하던 평가 중 많은 부분을 스스로 내재화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역시도 ‘수학자’보다는 ‘철학자’가 더 중시되고 더 명망 높다고 여겼던 게 분명하다. (197쪽)

 

15세기와 16세기에 이루어진 지리적 발견들과 연관된 세계의 개방과 팽창은 자연세계에 관한 지식의 축적을 목표로 하는 기관들, 즉 한마디로 연구를 위한 기관들의 발전을 가져왔다. 연구는 발견해야 할 대상의 존재를 함축하고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주장자였던 프랜시스 베이컨에 따르면 그 대상이란 실용적인 가치가 있는 것들을 의미했다. 베이컨이 몇 차례에 걸쳐 제안했듯 실용적인 가치가 지닌 최고의 장점은 진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 있었다. 산업이나 농업의 개선 같은 문제와 더불어 무역의 문제는 나중에 새로운 왕립학회가 계승하게 될 17세기 중반의 자칭 ‘베이컨주의자’ 모임들이 추구한 개혁의 중심 과제였다. (239쪽)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철학자에게 ‘경험’은 자연에서 늘 일어나는 일들에 관한 지식을 획득하기에 적절한 원천이었다. 뉴턴과 그의 추종자들에게 실험철학은 자연을 추궁하여 본질적 지식이 아닌 조작적 지식을 얻어내는 수단이었다. 조작적 지식은 사물 자체와 관련해 진짜로 참인 것이 무엇인가보다는 어떻게 사물을 작동하게 하는가를 말해주는 지식이었다. (272쪽)

 

16세기와 17세기를 거치면서 유럽의 국가들은 역사상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자신들의 힘을 세계의 다른 지역에 퍼트려나가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유럽을 넘어선 세계에 대한 정보를 유럽 내로 들여올 수 있는 종류의 지식이나, 물질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세계의 다른 지역을 지배하기 위해 그곳에 더 효과적으로 도달하게 해줄 수 있는 종류의 지식이 점차 지지를 받게 되었다. 17세기에 베이컨적인 유용성을 강조하는 수사적 표현들이 국가의 번영과 연관되어 널리 퍼진 현상은 유럽인의 생활에서 일어난 광범한 변화를 직접적으로 반영한 것이었다. (3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