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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소개

『승리의 길』

신국판|292쪽|2018년 4월 20일 펴냄


중국의 역대 명장 10인은 『손자병법』을 어떻게 응용했을까? 

명장이 주도한 10개의 명전투는 『손자병법』의 어떠한 이론을 적용했을까? 

실전 사례로 운용된 『손자병법』의 핵심을 해부한 본격 실전편!



중국 역사를 『손자병법』으로 검증하다 

『손자병법』은 중국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병법서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지피지기知彼知己’나 ‘싸우지 않고 이긴다不戰而屈人之兵’ 등은 모두 『손자병법』에 있는 구절이다. 그런데 『손자병법』 13편의 내용은 대부분 추상적인 사상과 이론이라 일반인들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에 공손책은 시종일관 실전 사례로 『손자병법』을 검증하고 있다. 이 책은 10인의 명장, 10개의 전투 이야기와 『손자병법』을 연결하여 중국 은상殷商 시대부터 청淸나라 때까지 중국의 역사를 조감한 것이다. 중국의 역대 명장을 선별하고 그들이 어떻게 『손자병법』을 구사했는지 분석했으며, 그와 함께 명장이 주도한 전쟁이 중국 역사의 흐름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풀어주었다. 그중에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적벽대전赤壁大戰 이야기도 있고, 별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국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전투도 있다. 대만의 저명한 역사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저자 공손책(본명 천저밍陳哲明)은 타고난 이야기꾼의 재주를 살려서 종횡무진 실감나게 역사 속 명전투와 명장들을 불러온다.   


“현대인이 『손자병법』을 배워서 뭐합니까?” 

고전이 고전인 까닭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막상 고전의 내용을 운운하면 대부분 고개를 돌린다. 왜 그럴까? 원인 중의 하나는 우리가 고전을 제대로 현대화하지 못한 탓이다. 예를 들어, 송나라 때 주희朱熹가 사서四書를 해설한 것은, 그때로 보면 현대화이다. 이 책의 저자 공손책은 『손자병법』의 현대화를 목표로, 『손자병법』의 핵심 원문(한국어 번역은 출판사 뿌리와이파리에서 출간한 『온전하게 통하는 손자병법』을 따랐다)을 가미하여 이야기의 중심을 잡고, 관건적인 전투 사례와 명장을 통해 역사의 흐름을 관통한다. 

이 세상은 전쟁터의 상황과 다를 바 없으므로, 지금도 『손자병법』은 여전히 적용될뿐더러 거의 모든 영역에 응용되고 있다. 사업, 경영, 투자는 물론이고 취업이나 전직에도 유익하게 적용할 수 있다. 역사상 명장들이 어떻게 승리했는지, 명장들이 어떻게 『손자병법』을 응용했는지, 얼핏 봐서는 『손자병법』에 위배되지만 실은 『손자병법』의 핵심에 부합하는 사례들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해당 지도 자료가 수록되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시간을 가로축으로 전투를 세로축으로 하는 일람표를 통해 한눈에 중국 전쟁사를 꿰뚫는다. 또한 각 장마다 흥미진진한 전투 장면과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한편, ‘『손자병법』 검증’ 코너에서는 역사적으로 도출된 『손자병법』의 승리 비결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지은이, 옮긴이 소개


지은이 공손책公孫策

대만의 저명한 역사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기자. 본명은 천저밍陳哲明이며, 공손책은 필명이다. 과거의 사건을 빌어 현실을 풍자하는 시사평론에 뛰어나며,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생생하게 살아 숨쉬게 하는 필력을 지녔다고 평가된다. 주요 저서로는 『대당풍大唐風: 대당제국 흥망사』, 『석양홍夕陽紅: 삼국 영웅 100인전』, 『여민한黎民恨: 왕망부터 광무제까지』, 『대대결大對決: 초한楚漢 영웅 투쟁사』, 『영웅겁英雄劫: 춘추시대 남방 삼국 쟁패사』, 『거제언去梯言: 역사의 시각으로 관찰하는 대만』, 『수호전水滸傳과 직장 생존술』, 『서유기西遊記와 직장 필살기』, 『빙감식인학氷鑑識人學』, 『강희康熙 황제의 책략』, 『공손책이 해설하는 당시唐詩 이야기』, 『공손책이 해설하는 명언 이야기』, 『사기史記 명언 100』, 『전국책戰國策 명언 100』 등이 있다. 

공손책은 약 4년에 걸쳐 1000개의 역사 이야기를 개인 블로그에 연재하겠다고 공언했는데, 2016년 말 목표를 초과달성하였다. 그간의 성과를 정리하여 엮어낸 것이 위 책들이다. 이어서 2017년부터는 『손자병법』에 다시 주목하여 중국의 전쟁 이야기를 새롭게 집필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역대 명장을 선별하고 그들이 어떻게 『손자병법』을 구사했는지 분석했으며, 그와 함께 명장이 주도한 전쟁이 중국 역사의 흐름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풀어준 것이다. 이 책은 중국 상商나라 때부터 청淸나라 때까지 중국 전쟁사를 『손자병법』으로 해부하여 그 신묘한 승리 비법을 분석한다. 


옮긴이 이인호李寅浩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사마천의 『사기』로 국립대만대학교에서 석사, 국립 대만사범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ERICA 캠퍼스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국의 수많은 콘텐츠를 넓고 깊게 공부하여 일반인도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인문교양서를 써왔다. 지은 책으로 『하루한자공부』, 『장자에게 배우는 행복한 인생의 조건』, 『사기 이야기』, 『인트로 차이나』, 『사기 열전』(상), 『사기 본기』, 『e시대의 사기』, 『논어-사람의 길』, 『장자-분방한 자연주의자의 우화』, 『나는 중국어도 인터넷으로 배운다』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온전하게 통하는 손자병법』, 『12개 한자로 읽는 중국』, 『중국 문화사』(상하), 『영옥우화』, 『사기교양강의』 등이 있다.



차례 


중요 전투와 왕조 교체 일람표 

지은이 서문  


프롤로그 

00 강자아-전략의 시조  

0 손무-전략의 신  


본론 

01 사마양저-싸우지 않고 적의 군대를 꺾다  

02 오기-졸병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준 대장  

03 장평 전투-진나라는 조나라 병사 40만 명을 생매장했다  

04 거록 전투-항우는 필사의 각오로 장한을 격파했다  

05 한신-사지로 몰아야 살아난다  

06 곤양 전투-소수로 다수를 공격하여 승리하다  

07 반초-서른여섯 명이 서역에서 위세를 떨치다  

08 관도 전투-조조는 원소의 모든 실책을 장악했다  

09 적벽대전-마음가짐이 전술을 바꾸었고, 풍향이 결과를 결정했다  

10 제갈량-패전 뒤처리의 최고 명장  

11 비수 전투-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다  

12 호뢰 전투-포위하여 압박하고 지원군까지 격파하여 일거양득  

13 이정-번개처럼 초전박살  

14 서세적-지혜·용기·충성·의리를 겸비했다  

15 고량하 전투-북송은 거란보다 빨리 튀었다  

16 악비-운용의 묘  

17 파양호 전투-주원장은 진우량을 ‘저격’했다 

18 척계광-근대 중국 군사훈련의 태두  

19 사르후 전투-명나라는 이때부터 만주 쪽을 넘보지 못했다  

20 좌종당-정치·군사·재정 기획의 고수 


옮긴이 후기



본문에서


그러므로 독자 여러분께 건의 드린다. 이 책을 접할 때 두 가지 시각으로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다. 우선 ‘명장의 시각’에서 관찰하여 명장이 어떻게 『손자병법』의 관련 내용을 정확히 집행했는지 확인하라는 것이다. 이어서 ‘전투의 시각’에서 관찰하여 승리한 자는 어떻게 승리했고, 패배한 자는 어떻게 패배했는지 비교해보라는 것이다. (10쪽) 


이 책은 시종일관 실전 사례로 『손자병법』을 검증하고자 한다. 중국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던 10개의 전투, 그리고 절묘한 용병술로 역사 에 이름을 남긴 10명의 명장을 사례로 삼아 복잡다단하고 변화무쌍한 전쟁터에서 『손자병법』이 어떻게 운용되었는지 확인하고자 한다. 10개의 전투는 중국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전환점이므로 이 책은 고대로 부터 근대까지 시간 순서대로 서술했다. (12쪽)


『손자병법』의 첫 편 「계」는 손무가 합려에게 진상한 첫째 글이다. 현대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핵심을 요약한 ‘개요’인 것이다. 손무는 군왕 앞에서 당당했다. 내가 이야기하는 방안을 당신이 받아들인다면 나는 승리를 자신하기 때문에 당신 곁에 머무를 것이고, 내 방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는 떠나겠다는 것이다. 

손무는 중국 역사에서 병성兵聖, 전쟁의 성인, 즉 ‘전략의 신’이 되었는데, 그가 지은 『손자병법』을 능가할 책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그에 못잖게 중요한 요인 하나는 ‘장군이 전쟁을 할 때는 군주의 명령을 받지 않을 수도 있음’을 전형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28쪽)


승리를 서로 경축할 때 장교들이 한신에게 여쭈었다. “병법에서 가르치는 포진의 원칙은 우측과 후방에 산을 두고, 좌측과 전방에 물을 두라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대장군께서는 반대로 포진하면서 오늘 아침에 승리한 뒤 함께 회식하자고 하셨습니다. 어제 그런 말씀을 하실 때 저희는 믿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에 말씀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것은 도대체 어느 병법에 무슨 전술입니까?” 

한신이 설명했다. “병법에 다 있는 것인데 제군들은 주목하지 않았을 뿐이네. 『손자병법』에 이런 구절이 있는 것을 기억하는가? ‘절망의 땅에 던져야 보존할 수 있고, 죽음의 땅에 빠뜨려야 살아날 수 있다(投之亡地然後存, 陷之死地然後生).’ 내가 자네들을 이끌고 원정에 나섰는데 오랫동안 함께 훈련한 것도 아니고 또한 병사들은 급조된 오합지졸이라네. 이런 병사들을 데리고 싸우려면 그들을 죽을 곳으로 몰아넣어야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들 도망갈 텐데 전쟁은 무슨 전쟁인가.” (87~88쪽) 


당나라 때 시인 두보杜甫는 이런 구절을 남겼다. “제갈량의 명성은 우주에 드리우리(諸葛大名垂宇宙).” 제갈량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에 대한 소개는 생략한다. 그런데 역사가 진수陳壽는 정사 기록 『삼국지』에서 제갈량을 이렇게 평가했다. “군대 관리에 강했지만 묘책에는 약했다. 정치적인 능력이 군사적인 능력보다 우월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제갈량의 정치적 재능은 군사적 재능보다 우월했다는 뜻이다. 군사적인 재능으로 말하자면, 군대를 관리하는 능력이 전술 전략을 짜는 능력보다 우월했다는 뜻이다. 이렇게 말하면 나관중의 소설 『삼국연의』를 읽고 제갈량에게 매료된 광팬들께서 강력히 항의하겠지만, 역사가 진수의 평가는 사실 대단히 정확한 지적이었다. (142쪽)


동서양과 고금을 통틀어 명장은 많다. 대부분 전쟁에서 승리하여 명장이 되었다. 그런데 유독 제갈량만은 패전의 뒤처리로 명장이 되었다. 좀 더 확실하게 말하자면, 제갈량은 전쟁에서 패하여 물러날 때 오히려 중요한 승리를 거두었다. 사실 이것은 대단한 능력이다. 이런 능력을 갖췄기에 제갈량은 비록 전쟁에서 패했지만 군대의 전투력을 보존할 수 있었다. 모든 병법은 승리를 추구한다. 그러나 『손자병법』에는 두 가지 중요한 관념이 있다. 하나는 ‘미리 이기라(선승先勝)’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온전하게 이기라(전승全勝)’는 것이다. 『손자병법』의 다음 내용은 ‘온전하게 이김’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156쪽)


이정이 활약하던 때는 손자의 시대보다 전쟁의 형태나 무기 그리고 군별軍別에 있어서 모두 훨씬 복잡해졌다. 이정은 손자가 강조했던바 “장군의 중대한 책임”을 인식하고 각기 다른 지형에 알맞은 새로운 진법을 개발했던 것이다. 이는 다른 장군들이 넘볼 수 없는 경지였다. 그와 동시에 이정은 한신을 대단히 흠모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처형을 앞두고 고함을 질러 목숨을 건진 것이나 당검의 안위를 고려하지 않고 힐리가한을 습격한 것은 모두 한신으로부터 배운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양梁나라의 병력을 운용하여 보공석을 평정한 일은 한신이 위魏나라·조趙나라 병력을 운용한 일과 다를 바 없다. 한신에게 병력은 많을수록 좋다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의 고사가 있는데, 이정에게도 그런 재주가 있었던 것이다 (197쪽)


서세적은 난세의 불량배로부터 시작하여 이제는 전투로 난민을 구하는 영웅이 된 것이다. 이런 변화를 서세적 본인도 대견하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내 나이 열두셋 때는 막가는 불량배여서 사람만 보면 죽였다. 열너덧 때는 난세의 불량배여서 싫은 일을 당하면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였다. 열예닐곱 때는 철이 든 불량배여서 전투에 나 가서만 사람을 죽였다. 이제 나이 스물에 대장군이 되었으니 죽을 지경인 백성을 전투로 구원하고 있다.” (204쪽) 


악비가 『무목병법武穆兵法』을 지었다는 설도 있지만 지금까지 전해지는 자료는 없다. 겨우 남아 있는 악비의 병법 관련 발언은 “운용의 묘는 한마음에 달렸다”는 이 한마디뿐이다. 훗날 병법 연구자들은 악비가 금나라 군대를 격파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한마음’에 있다면서 ‘일심一心’을 강조하곤 한다. 물론 ‘일심’이란 장군과 사병이 ‘한마음’으로 뭉치는 것 이니 승리의 기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외에도 ‘운용의 묘’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악비의 ‘산병전술散兵戰術’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말하자면 병력이 야전에 돌입했을 때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는 전술이 그것이다. (중략) 병력을 풀어놓았다가 다시 끌어모으는 전술인데 ‘적의 예봉을 피했다가 적의 가슴과 등을 치는’ 작전이었다. 어떻게 이런 전술이 가능할까? 악비의 군대는 평소에 그런 전술을 숙달되게 훈련했기 때문 이다. 사병들은 어떻게 흩어졌다가 어떻게 다시 모이는지 눈을 감고도 훤히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222~223쪽) 


척계광은 병사를 훈련시키는 데에도 탁월하여 명나라·청나라 이후 군사훈련의 전범이 되었다. 그는 병사를 선발할 때부터 기준이 있었는데, 오로지 농민만 뽑았고 도시 출신의 청년은 일절 배격했다. 무릇 얼굴이 하얗고 눈동자를 잘 굴리고 행동거지가 경박한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심사에서 탈락시켰다. 그런 자는 대부분 도시 출신이고, 이익 앞에서 도리를 모르며, 더욱 치명적인 약점은 단합을 해친다는 것이다. 일단 적과 격전이 벌어지면 그런 자들은 본인만 뒤로 빠지는 것이 아니라 동료까지 부추겨서 도망치고, 그러다가 잡혀오기라도 하면 이번에는 주둥아리만 살아서 모든 잘못을 동료에게 전가한다고 했다. (253~254쪽) 


이에 좌종당은 새로운 전략을 제시하여 정적들의 공격을 피했다. 새로운 전략이란 ‘완진속결緩進速決’이었다. ‘완진’이란 천천히 진격하겠다는 것이다. 진압을 서둘지 않고 우선 군대를 정비한 후에 개전하겠다는 뜻이다. 좌종당은 1년 반 정도를 준비 기간으로 잡았다. 그사이에 군사비를 조달하고 군량미와 사료를 비축했다. 아울러 군대를 정리하고 불필요한 인원을 내보내어 전투력을 높였다. 심지어 자신이 키웠던 상군마저도 칼질했는데, 불요불급한 부서를 통폐합했으며 출정을 원치 않는 병사에 대해서는 명퇴금을 지급하고 귀가 조치했다. (278쪽)